일곱째 날, 3월 29일(토)
☑ 에르덴조 사원(Erdene Zuu Monastery)
몽골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찰 중 하나로, ‘보석의 사원’이라는 뜻을 지닌다. 1585년 아부타이 사인이 세운 사원으로 카라코룸 인근에 있다. 한때는 100개 이상의 탑이 있었고, 수천 명의 승려들이 머무는 거대한 사찰이었으나, 1930년대 공산주의 시기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는 중앙에 티베트 불교 양식과 몽골 전통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세 채의 사원이 남아있으며, 약 108개의 스투파(탑)가 사각형 성벽을 따라 늘어서 있다. 몽골 불교 유산을 대표하는 상징적 성소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오르혼 계곡 문화경관 안에 자리하고 있다.
날씨요정할매, 쳉헤르의 원천은 배알하지 못하다.
일어나자마자 3차 입욕을 하고 라디에이터 위에 널어 말린 옷도 수거한 후,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었다. 3박4일 일정의 투어를 온 젊은이가 할매들의 여행 일정이 궁금한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가려고만 하면 날씨가 좋아져 어김없이 일정대로 잘 다닌다고 했더니 그걸 “날씨요정”이라 한댄다. 예쁜 별호다, 그러나 우리도 염치가 있으니... “날씨요정할매”라 정정해서 부르기로 했다.
쳉헤르의 원천을 찾아 나섰으나, 겹겹이 쳐진 철조망과 이웃한 리조트들의 담에 갇혀 결국 오보(푸른 하닥이 매달린 원뿔형 제단)는 배알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섭섭하다. 쳉헤르 온천지역은 스텝 지역 중에서도 습지인지라 낮은 풀 아래 땅들이 물을 많이 머금고 있다. 조심하며 걸었으나 등산화가 엉망이 되었다.
사막에는 낙타가, 사막 주변의 스텝 지역에는 소, 야크, 양들이 많다. 몽골에서는 돼지를 보기 어려운데, 돼지는 더럽다는 선입견 탓에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산양은 개체수가 너무 많아지면 공식적으로 사냥 허가가 나고, 그러면 사냥꾼들이 모여들어 사냥이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멧돼지와 같은 처지인가 보다. 늑대도 민가에 해를 많이 끼치면 사냥 허가가 난다고 한다. 몽골 유목민들은 고기를 말려서 보관하는데, 말린 쇠고기는 여름 몇 개월, 말린 말고기는 따뜻한 성분이라 겨울철 애용식으로 쟁여두고 먹는다.
10시 20분 출발. 맛있는 토이야구르트가 할매들의 원픽이 되었다. 아예 1리터짜리를 들고 다니며 마신다. 하룻밤 새 눈이 다 녹아버렸다. 대지 위에서는 은빛 양 떼의 다리처럼 사부작거리며, 아지랑이 일 듯 눈이 증발하면서 초록색이 배여져 나온다. 지붕들도 아가의 눈처럼 반짝이며 우리를 유혹한다.
하얀 탑들의 침묵, 에르덴조 사원
배산임수 형상의 하르호린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이 있던 자리인데, 한눈에 보아도 수도로서 적합한 지형적,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 칸이 카라코룸을 정식 수도로 건설했으며, 이때 불교, 기독교, 이슬람 등의 종교 관용 정책을 폈다. 16세기 후반 티베트 불교(라마교)를 받아들이며 불교 국가가 되었고 그 상징으로 1580년대 에르덴조 사원이 세워졌다. 108개의 흰 스투파와 동서남북으로 4개의 문, 그리고 폐허가 된 카라코룸의 돌과 기와, 벽돌을 활용한 광활한 사원이 이곳에 있다.
코를 스치는 향 내음,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 냄새. 고요한 초원 위에 108개의 하얀 탑이 사각형으로 사원을 감싸고 있다. 스투파들은 모진 역사의 풍진을 몇 번이고 넘겼으며, 그래도 아직 우린 존재하고 있다고 조용히 말한다. 유목의 땅에서 시간은 곧 방향이다. 방향이 없으면 길도 없고, 길이 없으면 이름도 없다. 사원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에르덴조에 질문 하나 던져두고 왔다.
몽골에서 아이들은 알맞게 사랑받고, 노인들은 최대한 공경받으며, 어린 자식일지라도 자식은 부모를 도와 기꺼이 노작 활동을 한다. 연인들은 적당히 젊잖게 사랑 표현을 하며, 사람들은 모여서 흥겹게 놀 줄 안다. 어기 씨와 더기 씨도 그 사람됨됨이 몸에 배여 한국의 할매들을 어지간히도, 황송할 정도로 챙긴다.
사원 앞 노점상을 기웃거리다 승진을 도운다는 말에 은제 말목걸이를 움켜쥔다. 난 아무리 봐도 주석과 은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주 언니가 살펴보더니 은 제품이 맞다고 인증해준다. 볼수록 마음에 든다. 내친 김에 손잡이에 산양이 조각되어 있는 차 숟가락도 하나 득템하고, 남이는 팔찌를 구입해 팔에 차고는 세상 다 얻은 듯 환하게 웃는다. 역시 구매는 행복을 끌고 오는 전령이다.
다음에 사는 건 없다!
자꾸 이동해야 하는 여행길에서 기념품을 나중에 산다는 건 맞지 않다. 마음에 드는 것은 그 물건을 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한다. 특히 몽골에서는 엽서 한 장조차도 다음에 사는 건 없다.
제에바알~~ 음식은 조금만 시켜다오!
14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대접받으며 또 옥신각신이다. 우리의 주장은 고기를 안 먹는 사람도 있고, 할매들이라 소화도 안 되고, 원체 소식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제발 2인에 1인분 정도로 주문하라는 것이고, 어기 씨는 무조건 1인 1식단에 음료수까지 주문한 후 먹고 남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종교적 견해에서든, 지구 환경을 위함이든, 절대 먹고 남은 음식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어기 씨도 우리의 의견을 수용해 앞으로는 허락을 받고 음식을 주문하겠다 약속했다. 또 다행히 몽골 음식점에서는 1인 1식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래에 보이는 어마어마한 양의 고기 모둠을 보시라! 점점 몽골의 수태차에도 익숙해져 간다. 이곳의 수태차는 단순한 음료에 머물지 않고 고기나 만두를 넣어 전통 보양 수프가 되기도 하고, 쌀이나 기장 등을 넣어 죽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14시 30분. 레스토랑 앞 길가에 나란히 서서 겨울 햇살 바라기를 한다. 가늘게 눈을 뜨니 차가운 바람 속에 따뜻한 햇빛이 섞여들어 은빛 가루처럼 흩어진다. 어린 시절, 엄마가 방청소하실 때 우리 6남매를 밖으로 내보내면 이렇게 담벼락 양지바른 곳에 키대로 나란히 서서 도란도란 햇살을 쬐었었지. 참으로 따뜻했던 기억이 부지불식간에 소환되어 왔다.
15시 출발. 앞으로 70Km를 가야 하는데 50Km는 아스팔트, 나머지는 비포장도로란다. ‘그 정도는 껌’이라며 할매들 의기양양하다. 차 안에서, 총경비 90만원이 소요되었던 딸의 미스부산 참가기가 적벽대전 코메디 버전처럼 흘러나온다. 모두들 숨넘어가게 웃는다. 삶의 주름살이 펴져서 참 좋다! 슈퍼마켓에 들러 토이야구르트와 작은 금귤을 한 쪼마니 샀다. 여행지에서 작은 귤은 보일 때마다 산다, 가성비 좋고 맛도 뛰어나며 쉽게 나누어 먹을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