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째 날, 3월 30일(일)
불간의 경제는 전통적인 유목 목축업과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몽골에서 드물게 농업이 가능한 비옥한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 소, 말, 양, 염소 등의 가축 사육이 활발하며, 밀과 채소 재배도 이루어지고, 사과와 과일 재배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 지역은 몽골 전통문화와 불교 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어, 다양한 축제와 전통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호사를 주신 리조트의 성주신께 감사드리며 게르 6호로 내려가지 않고 어기 호수를 바라보며 혼자 밥을 먹었다. 어젯밤 고추장에 비벼놓은 아침은 더없이 맛나다. 따뜻한 물 한 잔을 주신 커피포트에게도 감사한다. 할매들도 모두 방을 나서면서 방에게 하룻밤 묵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리고 잘 보살펴주셔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난 잠시 틈을 내어 어기 호수의 여왕을 배알하고 왔다. 예류의 여왕머리 바위 같은 얼음 조각은 스핑크스처럼 어기호수를 지키고 앉아있다. 8시 30분. 차에 기대어 졸며, 속삭이듯 얘기하며, 한바탕 웃음을 날리며 길을 간다.
양 한 마리가 봄을 데려올 때
11시. 차 옆에서 하얀 양의 새끼가 땅바닥에 툭 떨어진다. 아, 위대한 탄생이 바로 눈앞에서 거침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의 한 장면처럼 나타나 당황스럽다. 출산은 소리도 예고도 없이, 너무도 담담하게 평범한 날씨처럼 내 눈앞에 도착했다.
갓 태어난 아기 양은 양수를 뒤집어쓰고 네 다리로 간신히 버티고 선다. 그 짧은 시간에, 그 작은 몸이 걸음을 배우고, 세상의 냄새를 맡고, 자신을 낳아준 존재를 찾는다. 어미는 먼 땅만 바라보고 있다. 분명 새끼의 안전을 위해 불안한 마음으로 본능적인 적들과 대치하고 있으리라. 새끼를 낳는 잠깐 사이 자신들의 무리에서 떨어지므로, 젖을 물리기 전에 군집 속으로 들어가려 애쓰는 것 같다. 난 짧은 순간, 배움도 없이 처음 걷는 생명에게서 삶을 다시 배우고 있다.
왜 돈 들여가면서 힘들게 떠나느냐고 묻지 마시라, 이런 예기치 못한 경이로움은 안방에선 결코 얻지 못하리니!
바들바들 떨며 어미를 향해 한걸음씩 옮기는 아기양을 보며, 귀여워서 바들바들 떠는 할매들. 어기 씨는 ‘중국 사람들은 1달도 안 된 아기양을 먹지만, 몽골 사람들은 불쌍해서 어린 양은 안 먹어요.’ 한때, 개 먹는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디스하듯이 삽시간에 중국이... 하기야 음식의 재료로 따지자면 중국이 좀 그렇긴 하지...
1Km도 못 가 또 다른 양의 출산을 실시간으로 마주한다. 이번엔 검은 양이다. 서 있는 어미의 엉덩이에서 검은 새끼가 툭 떨어진다. 더기 씨는 우리가 양의 출산에 관심을 두는 걸 알고는, 눈치 있게 어미양이 잘 보이도록 약간 거리를 두고 차를 세운다. 몽골의 양들은 그냥 걸어가면서 새끼를 낳는가 보다. 그리고 어미는 태어난 새끼가 스스로 한 걸음 걸어 다가오기를 기다릴 뿐, 결코 먼저 다가가 젖을 물리진 않는다. 새끼가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 그것이 자연의 방식이다.
그렇게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진짜 삶의 원형이거늘,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기다려주지 못하고, 늘 앞바라지를 하며 먼저 개입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봄은 갑자기 온 것이 아니었다, 양이 태어나는 그 자리에서 봄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알았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봄이었음을 기억해낸다. “오구 오구 귀여운 것, 검둥이야, 힘내서 잘 자라거라.” 새끼양은 갑자기 우리나라 앞마당의 개, 검둥이가 되었고, 좀전의 새끼는 흰둥이로 명명되었다. 그리고 신나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몽골에서는 출산철(3~4월) 이후 새끼양이 많이 태어나는 시기에 먼 곳에서 손님이 오면, 특히 어린이, 여성, 혹은 외국 손님에게 정성껏 양을 골라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이는 축복과 생명을 함께 나눈다, 호의를 오래 간직하겠다는 몽골 유목민의 환대와 넉넉한 심성을 보여주는 풍속이다. 막 태어난 새끼나 주인이 직접 젖병으로 키운 양을 주면 선물받은 사람은 양의 이름을 지어준다. 여행자가 받을 경우에는 상징적으로 받고 사진을 찍고 주인에게 다시 맡기는데, 현지 사람이 받은 경우 새끼양을 키우며 인연을 이어간다.
주인이 우리에게 “네가 키워라.” 하며 양을 주진 않았지만, 이름을 지어주었으므로 반쯤은 선물을 받은 셈이다. 숙소에 들어와서 쳇에게 ‘양의 출산’에 관해 물어본 결과, 출산한 어미양의 붉게 부풀어 오른 뒷부분은 엉덩이가 아니라 생식기였다. 할매들이 아무 생각 없이 엉덩이로 새끼가 나왔다고 오보했을 뿐...
봄눈으로 인해 대지는 촉촉하고, 하늘엔 검독수리가 우아하게 날고 있다. 부디 그의 눈이 갓 태어난 새끼양을 쳐다보고 있진 않기를!
양들을 품고 있는 저 부드러운 능선이 몽골인의 심성이다.
12시. 넓은 비포장도로 옆의 화장실이다. 마을과 너무 떨어져 있다 보니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천하무적인 나도 사용이 어렵다. 가는 길엔 야크 뼈가 뒹굴고, 통시(전통 화장실)의 직사각형 구멍은 발을 디딜 수가 없다. UFO 모양의 구름을 보며 돌아나왔다.
12시 20분. 차 세우고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말똥을 참을만한 사람은 언덕 위에서, 아니면 차 안에서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며 피크닉이 시작된다. 초원임에도 바람이 많이 불어 목에서 먼지 냄새가 난다. 안뽀거토(안주머니), 산만디(산마루), 찡기다(끼이다), 정지(부엌), 추접다(더럽다), 알라(아기) 등 할매들의 사투리 대잔치가 벌어지더니, 어젯밤 별 보느라 잠을 설쳐서인지 이내 묵언수행들이다. 사투리를 이해한다는 건 같은 지역, 같은 연배라는 무언의 증거지.
14시 30분, 불간호텔 도착. 비로소 제대로 식물이 심겨져 있는 화분, 가정용 비닐하우스, 큰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