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째 날, 3월 30일(일)
귀신놀이
17시. 남이와 동네 탐방에 나선다. 호텔 바로 옆에는 문화공간(문화센터), 좀 내려가니 문화회관, 길을 꺾어드니 배구장, 씨름장, 어린이놀이공원, 동물병원, 체육관, 지역청, 석탄공장, 폐가 등이 있다. 폐가 앞에서 귀신 놀이를 하고 있는 어여쁜 몽골 소녀들과 귀신 연기를 하며 한참 동안 놀기도 했다. 엄청 즐거웠다. 폐가 안에는 제거하지 않은 전깃줄이 늘어져 있어 목멘 귀신이 있을 것도 같고, 여기저기 억센 거미줄들이 걸려 있어 제법 으스스하고 냉기가 흐른다. 정말로 좀 무서워서 "꺄악~"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오니, 아이들도 바닥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달고 뛰어나온다. 밤에는 못 들어갈 것 같았다.
체육관과 배구장
길에는 멋진 몽골의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어서 궁금했다. 물어보니 지금이 배구 시즌이라 내일부터 시작될 대회에 참가할 학생들이었다. 우린 서로 잘 안되는 영어로 소통을 했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순진하던지 한 문장 하고는 도망가고, 한 문장 던지고는 친구 뒤로 숨는다. 떠나는 날이라 시합은 못 봤지만 그들과 함께 배구장은 구경했다.
체육관 앞에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잼친 다바자브(Jamtsyn Davaajav)와 최초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동메달리스트, 최초의 세계챔피언 은메달리스트, 동메달리스트를 배출한 유명한 복싱코치인 오순 즈한(Osun Zhan)의 동상이 서 있다. 지도자(코치)의 동상이 꽤 인상적이다. 유명 선수는 앞에 서도, 그 뒤를 지킨 지도자는 뒤에 서거니와... 여긴 코치를 앞으로 세웠다.
발목에 금이 갔나 했더니, 파란색 하닥을 꽁꽁 묶어놓은 것이다. 아마도 시합에서의 승리를 소원한 것이었겠지. 하닥은 몽골 및 티베트 불교 문화권에서 존경, 축복, 환영, 기원을 상징하는 전통 의례용 천이다. 푸른 색은 하늘, 흰 색은 순수, 노란색은 지혜를 상징한다.
남카이와 루브산잠바
씨름은 나담 축제의 국가 3대 행사(씨름, 승마, 궁술) 중 하나이며 문화무형유산에 등재된 전통 스포츠이다. 512명(혹은 1,024명)이 참여하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9~10라운드를 통해 승자가 결정된다고 한다. 씨름장은 문이 잠겨 있어 들여다 볼 수가 없었지만 광장에 있는 챔피언 동상들은 재미있었다. 챔피언(국가 아르슬란 이상의 선수)들은 명예 마스터로 인정을 받는다.
나담 대회에서 19회 우승, 7회 준우승을 기록한 전설적인 선수, 남카이(Namkhai)는 몽골 정신의 정체성, 강인한 기상, 전통 스포츠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도 몽골 씨름계에서 최고의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근육의 형태, 선 자세, 전통 복장을 잘 재현하고 있는 루브산잠바(Luvsanjambaa) 등 잘 제작된 여러 씨름 선수들의 동상이 서 있다. 님카이 동상은 굉장히 강렬하여, 주변을 몇 바퀴나 빙빙 돌며 남다른 작가(제작자)의 시선에 감탄하였다.
전염성 강한 어깨춤을 배우다
17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볼간 문화회관에서 음악 공연을 관람했다. 국민 여가수 B.우란자야(B.Uranzayaa)의 ‘마음 속 전설’이라는 공연이었다. 티켓비는 30,000투그릭(13,000원 가량)인데 티켓이 몇 장 남지 않았다고 하니 만석일 테고, 자유석이라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일찍 호텔을 나섰다. “우리나라에서 가수의 리사이틀을 한 번 관람하려면 얼마나 비싼데... 가야지, 가봐야지.” 할매들의 총출동이었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그건 몽골의 예술성을 미리 짐작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었다. 공연은 훌륭했다. 비록 무대의 뒷배경이 세련되지 않았고, 시종일관 한 화면으로 버틴다거나 찢어진 스크린을 테이프로 대충 붙여두긴 했으나, 이를 덮고도 남을 만한 출연진들의 정성, 관객의 문화 향유 수준이 있었다. 가수 B.우락과 출연진들은 무대를 영혼으로 채웠고, 관객들은 온몸으로 그 무대를 받아들였다. 있는 그대로의 흥을 쏟아내며, 같이 웃고 같이 춤추고, 같이 노래했다.
중년의 한 여인은 시종일관 벽에 붙어서서 강한 전염성의 어깨춤으로 우리를 즐겁게 했고 우리도 홀려서 같이 어깨춤을 추었다. 그 어깨춤은 몽골을 떠날 때까지 순간순간 우리와 함께 했다.
모든 관객이 따라부르던 메인 곡, 사랑을 전설처럼 기록해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마음속 전설’은 큰 울림이 있었으며, 과묵해 보이는 몽골 여인들이 뿜어내는 흥과 신명은 그들 삶의 또 다른 언어였다. 몽골의 삶 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갈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을 선물 받았다.
한껏 충만한 마음으로 밤길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늦은 귀가에 걱정하고 있었다는 어기(별이 빛나는), 더기(붓다) 씨에게 같이 관람하지 못해 아쉬웠다며 우리의 사랑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미안함의 표시로 골든고비 맥주 한 캔씩을 선물로 건넸다.
볼간 호텔에는 직접 만든 보석화가 많이 걸려있다. 주인장에게 재료를 어디서 구입했느냐 물었더니 울란바토르의 나란톨 시장에 가면 많다고 했다. 나에게 밤에 안 자고 무슨 일을 그리하냐고 자주 사람들이 묻는데, 사진 옮기기, 가계부 정리, 하루의 개요판 작성, 하루 일지 기록, 짐 정리 등 일을 다 하자면 날밤을 새도 모자란다.
새벽 04시 30분, 호텔의 침대가 아까우니, 이제라도 누워봐야겠다. 어기 씨는 우리의 강권에 못 이겨 우리 방에서 같이 잠을 청하고, 더기 씨는 호텔에서 샤워만 하고 결국 푸르공에 잠자리를 폈나 보다, 추울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