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만나고, 말을 타고,
동네를 돌고, 모닥불을 심다

아홉째 날, 3월 31일(월)

by 김연화

우리가 호수라 해도, 몽골인은 바다라 한다며 어기 씨는 자꾸 홉스골을 바다라 주장한다. 아, 그래, 바다 맞다. 파도가 쳐서 저렇게 파도 얼음으로 빛나고 있으니 바다 맞다고 하자. 바이칼도 바다라고 하지.


홉스골 바다에는 샤먼이 산다고 하지. 순록을 기르는 차탄족은 나무집에 살고, 산양과 늑대와 여우와 곰은 숲속에 산다네. 홉스골의 물은 바이칼로 흘러가고, 바이칼은 러시아가 가져갔지. 바이칼은 몽골인들에게 있어 ‘북쪽 영혼의 바다’였고, ‘몽골의 땅’이라는 기억이 선명했어. 그러나 지금 거긴 러시아의 땅이지. 몽골은 홉스골의 물을 이용한 수력발전소도 못 짓고 있어, 러시아가 전기를 몽골에 팔아야 하니...


방갈로를 배정받고 호수 주변 산책에 나선다. 파도가 얼어 얼음 조각이 만들어졌는데, 아, 벽청색의 조각 안에는 코발트의 층층이 만들어낸, 표현 안 되는 아름다운 얼음 세상이 들어 있어. 차가운 파도 얼음 앞에 서서 넋 놓고 그 세상을 들여다본다. 어기 호수와 달리 홉스골 호수 속은 너무나 위험하므로 얼음이 두껍게 얼어도 호수 위로 차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 여름에도 물귀신에게 잡혀 들어가는 영혼들이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19시 30분, 어기 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김치 꽁치국, 감자밥, 많은 반찬들로 만찬을 차려낸다.


쪽달의 낚시줄에 걸리다

20시, 쪽달의 유혹에 못 이겨 또 게르를 나선다. 쪽달의 한쪽이 부메랑처럼 빙그레레 돌아 가슴에 꽂힌다. 쪽달의 낚시줄에 걸려온 동생과 딸에게 절절이 긴 사연을 전한다. 홉스골에 와 보니 비로소 어기 호수가 예쁘다는 말을 이해하겠다.


21시 30분.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와 춤추는 난로의 불꽃, 장작 타는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하루 일과를 기록한다. 장작은 자작나무가 아닌데도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시속 50 정도의 속도로 타들어 간다. 겨울의 몽골이 그지없이 아름답긴 하지만, 겨울에 관광객이 몰려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염려가 앞선다. 하룻밤 새 게르의 난로 안에서는 웬만한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니 말이다.

22시 30분. 어둠 속에서 남이와 혜가 나의 얘기를 듣는 줄 알고 신나게 얘기했는데... 독백이었다. 힘들었나 보다.

새벽 4시, 장작 2개를 더 투여한다. 난로는 금방 붉은 불길을 난사하며 작은 나무집의 벽에 오로라를 만들어낸다. 집안이 온통 붉은 오로라로 일렁인다. 아마 굴뚝으로는 흰 연기가 대기 중으로 빨려 들어가며, 크리스마스 카드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으리라.

현재 영하 5도로 별 사진을 찍는 동안 손끝이 약간 시려운 정도다. 그러나 방갈로 문만 열고 들어가면 따뜻한 난로가 장작 튀는 소리를 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아무 걱정 없다. 오늘도 은하수를 확연히 보진 못했다. 은하수띠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야간 모드로 놓고 눌렀더니 붉은 기운이 감지되긴 했다.

3인이 머무는 공간이지만 혼자 깨어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아니 추위를 피해 숨어들어온 큰 파리 한 마리가 앵앵거리며 존재를 알리고 있긴 하다. 펑 지지직, 탁 탁 타닥, 짝 짜자작, 텅 탁, 활활 터지며 관현악을 연주하는 난로도 참 정스러운 가족이다.

이 정적이면서 지극히 동적인 움직임이여!

이부자리의 가느다란 바스락거림이여,

굵어진 손가락의 느린 속삭임이여,

언제 어느 때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운명적 아쉬움을 보태며 따뜻한 온기로 이 순간을 기억한다.

가느다란 졸림은 까닥까닥 까무룩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옆 침대에서는 잠이 깊어지는지 코가 잠시 잠시 악기를 연주한다.


4시 25분. 아이고머니나, 불을 꺼뜨릴 뻔했다. 장작 타는 소리에 속아 불이 계속 타고 있는 줄로 착각했다. 30분도 되지 않아 큼직한 장작 2개가 소멸되어 버렸다. 자칫 잘못했으면 불씨를 지키지 못한 불침번으로 놀림을 당할 뻔했네. 던져넣은 잘 마른 장작은 꽈리 터지듯 꽝꽝 소리를 내며 다시 나를 녹인다. 1시간마다 장작을 넣는 것이 아니라, 20분마다 넣어야 한다, 장작이 너무 잘 말라서일까, 아니면 바깥의 찬 바람이 연기를 더 잘 피워올리는 걸까, 도통 알 수 없다.

어젯밤엔 먼지를 털어낼 새도 없이 척추를 침대에 눕혔다. 청량한 공기가 얼굴을 간질이며 세수를 시켰으려니, 맑은 기운이 치아도 씻겨 내렸으려니, 옷에 묻은 먼지는 이불과 나누었으려니, 날 것 그대로 시간이 흘러간다.

나무틀 위에, 매트리스 위에, 모포 위에, 침낭 위에 겨울옷 입은 몸을 누이자,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온기가 마음을 풀어내린다. 생수도 달디 단 밤이다. 호수 너머로 별이 지고 있다. 별이 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예순 너머 처음 알았다. 새벽 5시 30분, 불침번 교대식을 마치고 취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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