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골의 전설 속을 걷다.

열째 날, 4월 1일(화)

by 김연화
홉스골의 전설이 숨어 있지.

아침 9시. 남이와 호수 왼쪽으로 2시간 예정 트레킹을 시작했다. 호수가 속살을 드러내며 손짓한다. 비취빛 얼음 속엔 수천 년 홉스골의 전설이 담겨 무한한 상상력을 전달한다. 전생의 기억을 얼음 조각 속에 집어넣는다.

그 옛날 내가 몽골에 살았을 적

‘게르 안에는 나무 책상 하나와 등받이 의자 너댓 개,

그을음으로 칠해진 벽면에 걸린 남비 몇 개가 살림의 다였지. 게르는 흙바닥이었고~ ’


개와 50투그릭

순간, 늘 과묵하던 남이가 갑자기 팔짝팔짝 뛴다, 옆에서 나타난 개도 같이 뛰니 나도 무섭다. 양을 지키는 개는 본능적으로 우리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솟는지, 옆으로 다가오는 다른 개들을 경계하면서 계속 앞으로, 뒤로 따라붙는다. 양치기 할매에게 개 데려가라고 고함을 질러도 들은 척도 않는다. “야, 우리는 니가 더 무섭다, 주인 따라가라!”고 고함을 질러도 개도 들은 척도 않는다. 할 수 없이 트레킹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섰다. 돌아서는 길에 반짝! 50투그릭이 또 길에 놓여있다. 그 옛날 내가 잃어버린 돈이 돌아왔기에 이마에 붙이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었다. 숙소까지 따라온 개는 혜와 눈을 맞추며 혜의 사랑을 듬뿍 받고서야 사라졌다.

어기 씨는 아예 주인집 부엌까지 빌려 식사 준비에 진심이다.


"할머니, 개 데려가유~~~" "야, 우리는 니가 무섭다. 주인 따라가라구~~~ "

"50투그릭과 나" "혜와 사랑을 나누는 개"


점심 식사 후에는 숲으로 트레킹을 갔다. 가죽 벗겨진 채 죽은 아기양, 다람쥐, 말과 어린 양, 약이 되는 이끼, 솔방울 채취로 금방 숲과 친구가 되었다. 어린 마부 소까르(주인집 작은 아들)와도 미소를 나눴다. 숙소의 할아버지와 손주 두 명이 오늘 우리가 탈 말의 목에 고삐를 매고 안장을 올리는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할아버지는 노련하게, 어린 손주에게 시범을 보인다. 고삐에 매이기 싫어 자꾸 도망치는 말의 등을 어루만지며 토닥거리고, 말의 귀에 대고 계속 말을 건다. ‘두려워 마, 이 고삐는 너를 묶는 게 아니라 너와 나를 잇는 끈이야.’ 그리고 살며시 안장을 얹고, 고삐를 건다. 말과 사람 사이에 오늘 하루를 함께할 약속을 매는 일, 결코 쉽지않았다. 거칠게 반항하다 울타리 너머로 도망치는 점박이 말은 마지막까지 기다려주면서, 열 마리의 말을 준비시키기까지 거의 두 시간이 걸린다. 홉스골의 말들은 상업용 말이 아니라, 반려마였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니 너무나 편안해서 마음이 조용히 웃는다.


손자 소까르와 할아버지


14시. ‘몸에 힘을 빼고 말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 척추를 펴고 앉아 내리막길에서는 살짝 몸을 뒤로 제낄 것, 타기만 하면 말은 무조건 간다.’ 무서워하는 할매들을 위해 교육이 시작된다. 처음 말을 타는 미 언니와 혜씨도 아주 멋지게 해냈다. 모두의 텐션이 호수의 얼음을 깰 듯하다.


‘추츄, 츄츄~’

츄츄, 츄츄~ 말에게 말을 걸어 보지만, 말은 못 들은 척 그냥 걷기만 한다. 추츄는 초원에서 건네는 가장 조용한 인사말이 아닐까.

말을 타기 전 말 품평회를 하면서, 곱슬 갈기와 곱슬 꼬리가 우습다며 놀리던 말은 나에게 배당되었다. 성격 급한 할매에게는 급한 말이, 강한 할매에게는 상당히 거친 말이 주어졌다. 어릴 적 말을 타고 놀았다는 더기 씨도 승마 가이드로 따라나선다. 그는 푸르공보다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몽골의 젊은이, 칭기스 칸의 후예였다. 성실하고 건전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인데, 20살 젊은 나이에 우리나라에서 일할 때는 설움을 좀 받았나 보다.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물으면 ‘그냥 그랬다’며 말을 아낀다. 괜스레 미안해진다.

“더기 씨, 다음 생에는 몽골 말고, 유럽에 태어나서 카레이스 되셔요. 아마 최고가 될 거예요.” 할매들이 모두 동의한다.



하늘과 호수가 데칼코마니를 이루며 세상의 아름다운 푸름은 다 불러온다. 눈물 날 듯 고마운 자연의 선물이다. 어린 마부들에게는 책갈피를, 할아버지 마부께는 마스크팩을 선물로 드렸다.


15시 25분. 주인장 바스카는 굵은 금반지를 번쩍이며, 할매들의 밤을 위해 난로에 불을 지핀다. 무릉에서 학교를 다니다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16세, 14세의 듬직한 아들들은 말들의 고삐와 안장을 벗겨주고, 그리고 모닥불 준비를 위해 나무를 하러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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