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널 놓아주는 거야
愛 (이별조차 사랑인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이별을 경험한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누군가는 소중했던 친구를 추억 한편에 넣어두며 이별을 경험한다. 또 어떤 이들을 사랑했던 그녀 혹은 그를 다른 누군가의 품에 보내며 고독을 삼켜낸다. 이렇듯 사람은 태어나며 죽는 순간까지 필연적으로 이별을 경험한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좋게 헤어져본 적이 있어?"라고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질문이었지만 애써 웃으며 "난 지금까지 모든 이별을 좋게 끝냈어."라고 답했다. 좋은 이별은 없다. 좋은 헤어짐은 존재할 수 없다. 사랑했던 어떤 대상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일, '사랑하는'이 아닌, '사랑했던'으로 치부하는 일. 소중했던 기억을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은 추억이자 흑역사로 탈바꿈하는 과정. 이별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이별을 절대 달콤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되물었다. "너는 어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나는 좋게 끝난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너무나 자연스럽고 그럴 수밖에 없는, 시답잖은 질문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게 유지되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이후 입 밖으로 나온 누군가의 질문은 나를 진지한 사색에 잠기게 해주었다. "어떻게 좋게 끝난 거야? 이별이 좋을 수가 있었어?" 사실, 그냥 둘러대려고 대답한 것이었으나,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보낸 기억을 떠올리니 어느 정도 옳게 대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뜸을 들인 후 나의 대답은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한 거야. 헤어지는 순간까지 사랑했으니까.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과 하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였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명확한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며, 죽는 순간에는 모든 것과 단절, 즉 이별을 한다. 또한,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변덕스럽기에 수시로 변하곤 한다. 즉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이별을 해야 한다. 이는 꽤나 고통스러운 경험을 선사한다. 사랑하는 이를 보내야 하며, 그 사람과 함께하는 일상은 더 이상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사랑했던 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오로지 기억과 추억에만 의존하여 내가 애정했던 누군가를 떠올려야 하는 것. 이보다 가슴 아픈 일은 아마 굉장히 드물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이별은 사랑의 숨겨진 이면, 즉 사랑이 줄 수 있는 가장 나쁘고 큰 벌이자 반드시 도달하게 되는 최종 목적지. 사랑 뒤에는 반드시 이별이 온다. 우리는 영원히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이런 물음을 가질 것이다. '사랑의 결말은 반드시 이별이라면, 우리는 왜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하는가?' 혹은 '이별을 경험하지 않거나 상처받지 않고 사랑할 수는 없는가?' 해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긴 하다만,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것이 삶의 이유이자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의견에 반기를 드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견해와 가치관에 가장 부합하는 것은 '이별 또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즉, 이별과 사랑은 같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별과 사랑이 같다고 피력하는 이유는 '기억'이라는 부분에서 공통분모를 같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두 기억하고자 한다. 그 사람의 취향, 좋아하는 음식, 즐겨 듣는 음악 등등. 이는 우리가 의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사랑하기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이별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날짜, 그날의 분위기, 향기, 온도 등등. 가장 사랑했던 순간은 더욱 깊은 향수가 되어 돌아오고, 들리지 않고 들을 수 없는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울려 퍼진다. 문득 떠오르는 그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만의 특유의 향기 혹은 외형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표현해 준다. 사랑과 이별이 동일한 이유는 어찌 되었든 애정하는, 애정했던 이를 세상 그 어떤 누구보다 확실하게 기억한다는 것. 잊을 수 없는 '흉터'가 오로지 나에게 각인되는 것. 한 번 진지한 사랑을 시작했다면, 이 흉터는 상처가 아닌 자부심으로 바뀐다. 나만이 알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어처구니없게 미소를 띠게 만들어준다. 그렇기에 이별을 경험한다는 것은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 그 기간이 길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 시간 동안은 내가 사랑했던 이를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 사랑의 결말은 생각보다 비참하고, 우울하지 않다. 이별을 맛보았다는 건 내가 마지막까지 그 대상을 사랑했다는 것.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기에 이별이 도달하는 것. 이별은 사람의 종점이 아닌, 다시 한번 사랑을 시작하라는 출발점은 아닐까.
4년이라는 시간을 한 사람만 사랑하며 보낸 적이 있다. 그 사람과의 기억은 작년 초에 마무리가 되었지만 종종 생각나곤 한다. 물론, 이 감정은 미련이나 그리움의 감정이기보다는 그저 갑자기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유사하다. '그땐 그랬지'라며 무미건조한 일상에 들어오는 약간의 스파크. 딱 그 정도의 강렬함은 내가 태어난 이래로 가장 열심히 살았던 기억들을 사진처럼 보여주곤 한다. 주변에서는 아직까지 종종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왜 헤어졌냐?' 사실, 잡으려면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나랑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그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잡지 않은 이유는 싫어졌기에, 너무 밉기에, 더 이상 보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보다 진심으로 뜨겁게 사랑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대상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랑하기에 놓아준 것이다. 헤어지던 그 순간까지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더 이상 잡지 않은 것이다. 세상 어떤 이보다 더욱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했기에 사랑의 종착지이자 출발점을 맞이하였다. 그래서 미련이 없었던 것 같다. 후회도 역시 없다. 마지막에 든 약간의 물음은 '내가 다시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였다. 이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자부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더라도 이전의 사랑과는 절대 비교하지 말자는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은 참으로 많다. 가족, 친구 그리고 지나간 연인들을 모두 포함하지 않아도 매우 많을 것이다. 약간은 독특한 필자의 좌우명은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자.'이다. 이는 '지나간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것, 다가오는 인연을 이 악물고 밀어내지 않는 것'이라는 단편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본질은 다음과 같다. '용기를 내어 먼저 다가오는 사람은 누구보다 사랑해 줄 것, 그리고 있는 힘껏 사랑한 사람은 마지막까지 사랑하기에 보내주는 것' 누군가 나의 이별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면, 이는 매우 아쉽겠지. 다만, '미안하다.'라는 형식적인 사과를 할 생각은 죽어도 없기에, 만약에라도 있을 대상을 떠올리며 한 마디 건네어보고자 한다.
"나의 마지막 진심이 너에게 닿았다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내가 후회 없이, 그리고 마지막까지 너무나 많이 사랑한 사람이 너라서, 그 사람이 너라서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널 다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는 확답을 줄 수 없겠지. 하지만,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널 사랑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에, 그 순간까지 널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놓아준 것이라는 사실은 알아주었음 한다. 사랑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