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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노 Oct 03. 2023

서로 등을 돌린다는 것은

愛 (종점)

 사랑의 종점은 이별이며, 이별은 사랑과 동일하게 보아도 되며, 나아가 새로운 사랑을 만든다고 지난 글에서 서술한 바가 있다. 사랑에 대한 확고한 철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愛 (애정)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써 내려갔다.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누군가의 아픈 상처를 후벼 파고 잔인한 성배를 마시게 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회상에 잠기게 할 수도 있다. 새로운 사랑의 시작점이자, 사랑의 종점인 이별은 서로를 멀어지게 해 준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헤어짐을 경험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이들이 서로 등을 돌린다는 것. 서로가 등을 돌린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다시 몸을 돌려도 바라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는 서로 앞을 바라보며 얼굴을 마주한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표정으로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며 애정을 체감한다. 그 사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감정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사랑이 야속한 이유는 시작과 끝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시작할 당시에 마주하던 서로의 얼굴을 끝날 때는 서로 볼 수가 없다. 다시는 마주하지 않겠다는 강한 다짐이라도 한 듯 서로를 외면한다. 그렇기에 한쪽만 마음을 잡고 다시 몸을 정면으로 틀어도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이는 변함없는 사실이다. 앞에서 시작했고, 뒤에서 마무리하는 사랑의 형태는 너무 나도 잔혹하다.

 최근에 이별을 경험해 본 누군가가 있다면, 나의 글에 조금 더 깊이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유독 선선했던 어느 날, 떠나간 이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달갑지 많은 않다. 지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외로움에 사무치는 행위는 그만큼 마음과 정신이 지치고 약해졌음을 의미한다. 매일 아침 하루를 함께 시작하며 늦은 밤까지 혹은 새벽 내내 함께했던 그 대상이 사라졌기에, 분명 공허함을 느낄 것이다. 사람이란 감정적인 생물이기에 떠나갈 당시에는 그러한 모든 것들을 마치 너무나도 쉽게 감수할 수 있다는 듯 마음을 정리한다. 홀로 생각하고, 홀로 정의하며, 홀로 판단하고 결국에는 홀로서기를 택한다. 시작은 함께 했지만, 마무리는 홀로 결정짓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이것이 사랑이다. 누군가와 애정의 관계를 형성할 때는 항상 서로의 합의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먼저 마음을 표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받아들이며 서로 사랑한다. 그러나, 관계가 틀어질 때에는 누군가는 하염없이 기다리고 노력한다. 마음이 식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기에, 이를 눈치챈 이는 쓰라린 것들을 홀로 삼켜내고 인내한다. 돌아올 수도 있다는 불안정한 믿음, 과거에 사로잡혀 직시하지 못하는 현실. 여러 가지 온갖 감정들이 섞여 하나의 독한 요리가 형성되었을 때, 이를 삼킬 수밖에 없는 고독함. 사랑이 식어가고 끝난다는, 즉 이별을 이런 것이다. 이기적이고 독단적 결정이 내린 최후는 오직 한 사람만 모든 것을 짊어지게 할 가능성이 높다. 마음이 점차 식어가고 떠나갈 채비를 하는 이는 절대 알 수 없을 비극적 사실. 기다리고 인내하던 누군가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더 이상 홀로 서있기 어려울 때, 누군가 역시 등을 돌린다. 사랑을 노력하려 했으나,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허탈함을 경험한 사람은 누구보다 당차게 등을 저버리고 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누군가, 즉 먼저 마음이 식어가고 사랑을 정리했던 또 다른 누군가는 이제야 정말 끝이 났다는 것을 이해하고, 체감한다.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음에도 알지 못하는 가슴 한 구석 찝찝함과 이유 모를 서글픔이 그의 감정을 지배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알량한 자존심과 자기 합리화를 바탕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낸다. 사랑의 종점이자 새로운 사랑의 시작인 이별의 서사는 대게 이러하다.

 서로가 등을 돌린다는 것은 더 이상 사랑했던 이의 발자취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 눈을 떴고, 언제 잠을 청했으며, 언제 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는지. 한 때 사랑했던,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했을 당시 자신의 인생의 반을 함께했던, 할애했던 누군가 사라진다는 것은 엄청난 空(공허)를 선사한다. 삶이 무기력해질 수도 있으며, 피폐해질 수 있다. 물론, 누군가는 텅 비어버린 자리에 여유를 느끼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유와 여유 같은 긍정적 감정보다는 공허로부터 오는 쓸쓸함과 외로움에 지배당한다. 고통스럽다고 느끼며, 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결국, 돌아오는 감정은 후회와 미련이 가장 크다. 먼저 마음이 식어갔고, 정리하려 했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이가 없었기에 다시 한번 그 혹은 그녀를 추억하고 회상한다. 반대로,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을 모두 감내한 사람은 더 이상 사랑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한 것 같은 그 기분과 홀로 설 수밖에 없었던 고독함과 외로움은 한 동안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진정으로 혼자임을 깨닫고, 이를 느끼는 과정이 그리 짧지 않기에 그와 그녀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누군가의 애원과 용서로 인하여 마음이 변할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이러한 과정의 결말과 서사는 흔히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고 반전이 없다. 따라서, 서로 등을 저버리고 돌려버린 순간 우리는 정말 이별이 왔고, 사랑이 끝났다고 표현한다.

 지난 글과는 사뭇 다르게 이별을 고통과 외로움의 순간, 더는 사랑할 수 없는 것들로 치부한다. 누군가는 필자의 글이 줏대가 없고 포괄적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랑에 대한 확고한 철학적 관점은 없다. 이별이 새로운 사랑의 시작점인 동시에 사랑의 종점이라는 의견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순환과정 사이의 굴곡, 즉 空(공허)가 찾아오는, 서로가 등을 돌리는 그 순간은 너무나도 시리고 잔혹하다. 따스한 봄 이후에 여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닌, 다시 매섭게 추운 겨울이 찾아온 것처럼 한 순간에 분위기는 변하고 만다. 이별을 예상하고, 대비할 순 있어도 막상 찾아오는 매서운 눈보라는 쉽게 적응하고 감내하기 매우 어렵다. 알고 있음에도 대비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 그것이 사랑의 무서움은 아닐까. 사랑의 진정으로 숨겨진 이면이 아닐까. 흔히, 어떤 이들은 사랑이 달콤한 것이라고만 착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사랑이 달콤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모든 고독과 인내, 그리고 아픔과 상처의 혼합물을 삼켜내었기에 더욱 달콤한 것이 아닐까. 온갖 나쁜 감정들이 어우러진 독한 것을 입안 가득 채워 간신히 넘기고 났을 때, 입 안에 맴도는 특유의 단 맛을 우리는 달콤함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 예뻐 보이고, 달콤해 보이며,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그 모든 아픔과 외로움의 부정적인 것들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이별 아닌 이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 누군가가 내게 전했다. 후회 없이 사랑했지만, 할 만큼 한 것 같다고. 더 이상 노력할 자신이 없을 것 같다고. 이제는 점점 지쳐만 가고, 스스로가 너무 비참해진다고. 이러한 말들을 남기며, 누군가는 자신을 감추며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형식적이고 흔해빠진 위로를 건네기보다, 그 어둠 속이 그래도 따뜻하기를 바라며 바래다주었다. 암흑 속에서 길을 잃거나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기보다는, 부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이라도 한 줄기 빛이 있었다면 하는 바람이 앞섰다. 사랑의 결말인 이별은 반드시 어느 한쪽 혹은 양쪽에 아픈 기억을 심어준다. 사랑이 남긴 흉터는 때로는 영광스럽지만, 때로는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가 되기도 한다. 당신들의 '흉터'는 어디에 있는가? 남들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에 크게 자리 잡아 있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곳에 자그맣게 자리 잡고 있는가? 부끄럽지 않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필자는 작은 흉터와 큰 흉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떠나간 이별에 연연하지 말 것. 내가 누군가를 품었다고 생각했을 때, 사실은 품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 순간의 나를 그 어떤 누구보다 제일 많이 아껴주고, 소중해주며 사랑해 줄 것. 약간이라도 서로의 등이 돌아가있다면, 하루빨리 마음을 정할 것. 붙잡을 것인지, 놓아줄 것인지. 사랑하기에 누군가를 놓아줄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누구보다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다시 한번 붙잡아 더 큰 사랑을 만들 것인지. 자유와 책임의 몫은 무엇보다 크기에 이를 잘 견뎌낼 것. 서로가 등을 돌린다는 것은 언제든 비어있는 누군가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다는 것. 반대로 나 역시 칼에 꽂힐 수 있다는 것. 사랑이란 그렇게 위험하고 아플 수밖에 없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아픈 시간을 감내할 필요가 있는 것. 그럼에도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사랑은 부디 아픔 없이 따뜻하기만을, 내 사람들의 아픔이 오로지 나에게 전해져 나 이외에 모든 이들은 행복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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