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노 Feb 15. 2024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re

 사람은 변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옳은지, 이 길이 맞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되돌아보며 감내한다. 그러는 동시에, 변하고자 노력한다. 누군가는 자신을 가꾸기 위해 화장을 하거나 운동을 하여 외적인 부분에 변화를 야기한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학습하고, 무언가를 창출하고자 하는 시도를 꾸준히 이어나간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어떤 이들은 부러워하거나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 그리고 현재와 오늘날의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스스로를 변모하는 과정에 박차를 가한다. 여기서 한 가지 차이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그것은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목적성의 차이. 오로지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기 전 나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다'라는 단순하고 1차원적인 가치로 스스로의 변화를 촉진하였다. 칭찬받기 위해 공부하고 학습하며, 지기 싫다는 이유로 모든 잘하고 싶어 했다. 궁극적 혹은 본질적으로 내 삶의 변하는 과정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에 입각하여 나를 바라보았다. 이러한 행위는 흔히들 말하는 '번아웃'을 너무나도 쉽게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빨리 타올랐던 불꽃은 드넓은 모래사장의 열기처럼 순식간에 식어갔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정확한 목적성이 없었기에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나날이 늘어갔다. 이는 스스로를 좀 먹는 행위가 되었고, 어느 순간 멀리서 되돌아본 나의 모습은 어떠한 것도 아닌 모습의 형태를 띠었다. 1도 아니고 0도 아닌 그 어딘가의 위치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삼켜버린 현실이란 맛은 그 어떤 것보다 탁하고 쓴 맛이 났다. 잊을 수가 없는 맛이었기에 나는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고자 노력했다. 다시는 그 쓰디쓴 맛을 내 입 안 가득 채우고 싶지 않았기에.
 문제를 알고 난 후 그 문제를 방치하고 내버려 두는 방관적 행위는 참으로 옳지 못했지만, 과거의 나는 여러 가지 핑계들을 이유로 들먹이며 옳지 못한 행위를 일삼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여유가 안된다는 이유로 또다시 남들에게 잘 보이고자, 남들 눈에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문제를 직시했다는 것은 무언가를 진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행하고 있는 과정과 그 모든 것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상기된 것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과연 옳지 못한 행위인 것인가.' ,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그 어떤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24년. 이제 나는 누군가의 선배이자 형 혹은 오빠로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리기 어려운 나이인 스물셋이 되었다. 사회에서는 이 나이도 굉장히 어린 나이에 속한다만, 지금 내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사회라고 불리기에 다소 어려운 장소이므로 이러한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병역의 의무, 다가오는 졸업 등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떠올리고 난 후에 더 이상 온전한 내 모습의 변화가 아닌 표면 상 드러나는 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정으로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서야 변화라는 말을 형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지금 이러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 스스로의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야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출일 것이다. 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한 다짐과 진정한 출발. 이를 시작으로 형성되는 더욱 무거워진 책임감. 이것들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참으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 났다는 근거 없는 허풍과 자만이 아닌,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본질이 악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 곁에 있는 나도 어쩌면 좋은 사람이고 잘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의견인 것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왜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가, 나는 왜 변화하고자 하는가, 내면의 어떠한 변화를 가하고 싶은가, 진정으로 희망하는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 등등으로 꽤나 철학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느껴왔던 것처럼 내 주변, 그토록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에게 나도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다는 바람이다. 내가 그들의 주변이기에 그들 역시 잘 살아왔다 혹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신 있게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나와의 친분이 그들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갖고 있던 남들 눈에 좋은 사람으로 비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 '성공적으로' 비치는 사람이 아닌, 정말로 '성공을 이룬' 사람으로 비치길 희망한다. 나의 상황이 여유롭고 평탄하여 그들의 도움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요즘 가장 큰 목표로 작용한다. 정확한 목적성. 이것이 변하는 것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그 무엇보다 확실하게 해결해 줄 이정표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하얗게 뒤덮인 마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