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내리는 그것은 누군가를 즐겁게 함과 동시에 누군가를 아프게 할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절대적인 무언가는 존재할 수 없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완벽하게 찬 혹은 반, 흑 혹은 백으로 떨어질 수 없기에, 모든 사람에게서 동일한 의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얗게 그리고 소복이 내려 온 세상을 밝게 만든 그것이 세상을 지배했을 때, 당신들이 느낀 감정은 긍정이었을까 혹은 부정이었을까.
그러한 '눈'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 두껍게 자리 잡아 마음 한 구석에 꽁꽁 얼어붙는다. 쌓일 것 같지 않던 작은 알갱이들이 모이고 모여 넓은 범위를 장악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러나, 그렇게 금방 넓게 퍼진 그것들은 또 어느 순간에 전부 녹아버린다. 새하얗고 예쁘게 주변에 자신의 빛을 뿜던 그것이 전부 녹아 없어졌을 때, 그때의 흔적은 너무나도 더럽고 지저분하게 비친다. 많은 눈이 쏟아져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차갑고 강하게 얼어붙었을 때, 대부분은 이를 없애고자 바깥으로 밀어내고, 녹이려 한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던 대로 눈이 모두 녹아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거리가 더러워졌다고 느끼고, 신발에 묻은 눈의 찌꺼기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곤 한다. 눈이라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의 모순적인 모습을 감추기 위해 때 타지 않은 하얀색의 빛깔로 우리 곁에 찾아온 것이 아닐까.
눈이 내리는 마을, 그리고 하얗게 뒤덮인 마을. 그리고 무언가로 가려지고 감춰진 나의 마음. 나의 부정을, 나의 악의를 그 하얀 것으로 포장하고, 보이지 않도록 하는 그것의 노력은 언젠간 내 심장의 온도로 인해 녹아 없어지겠지. 하얗던 것은 어느 색으로든 쉽게 물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녹아 없어진 눈의 자리는 비가 만든 흙탕물보다 더욱 탁하고 더러우며, 지저분하다. 신발, 타이어 등등에서 뿜어 나온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모두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채 사라진다. 어두운 밤의 하늘을 밝게 만들어주고, 어떤 날에는 사람들의 그 무엇보다 원하는 것. 그럼에도 그 순간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쌓여있고, 사라진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그것이 우리에게 내릴 당시 차갑다고 불평하는 것. 눈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상대적인 물질이 아닐까.
오늘도 내 앞에 쌓인 눈들을 보며 내 마음과 그것의 색을 대비하곤 한다.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들, 불평과 불만들을 저 하얗고 예쁘게 쌓인 눈 위에 모두 쏟아낼 수 있다면, 나의 마음은 저 희고도 흰 눈처럼 선량하고 깨끗해질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오물들을 모두 털어내고 비워낸 후에 그것들을 전부 흡수한 탁해진 눈을 난 예전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눈이 내리는 겨울이 모든 계절 중 가장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내릴 당시에는 거리를 뒤덮는 따뜻한 이불이 되고, 찬 바람이 부는 날에는 가을에 쌓여있는 낙엽과 달리 더욱 견고한 이불이 된다. 그리고 그때의 사람들의 의상은 그 어떠한 날들보다 더욱 두껍고 따뜻할 것이다. 가장 따뜻하고, 가장 하얀 눈이 가장 차갑고 가장 더러워지는 그날은 겨울이 다 끝나감을 의미한다. 눈으로 인해 마음을 정화하고, 거리의 밝음을 맘껏 누리던 사람들은 그 하얀 물질을 더 이상 보기 힘들어하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꽃을 찾는다. 그럼에도 그 하얀 눈은 언젠가 또다시 소복하게 내려 새하얗게 마을을 뒤덮겠지.
상처를 받아도 늘 같은 계절에 내리는 일관된 모습은 우리가 눈에게서 배워야 할 무언가이지 않을까. 눈이 만들어준 이불을 걷어차고 굳세게 뻗어 나는 새싹이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꽃이 되는 그날에 눈은 무엇보다 하얗고 따뜻할까, 더럽고 차가울까. 눈으로 인해 하얗게 씻겨진 내 마음도 새롭게 피어난 꽃을 바라보고자 할까, 지나간 눈을 그리워하고자 할까. 매일매일 한 겹씩 벗겨져가는 저 눈더미는 어떤 기분을 하고 있을까. 필요할 때만 눈을 찾는 사람들. 그 사이에 피어난 눈꽃. 그리고 하얗게 정화된 나의 마음. 눈이 내리는 마을이자 하얗게 뒤덮인 마을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