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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노 Jan 12. 2024

의미와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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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와 해석. 이 단어들은 내 삶의 지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엇비슷한 시간대에 끼니를 해결하며 달이 밝게 뜬 밤이 되면 잠을 청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슷한 일상을 향유한다. 그러나, 때때로 매일 먹는 아침은 신년이라는 의미에 의하여 특별한 것으로 해석되고 정의된다. 백반이 아닌 떡국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태양은 똑같이 뜨고 지며, 달 또한 마찬가지이다. 반복된 일상 속 누군가는 자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이 땅에 발을 디딘 날을 기억하며 축하받곤 한다. 이 역시 생일이라는 개인에게 부여된 특별한 의미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정의된다. 사람은 누구나 의미와 해석을 통해 살아간다.

 이러한 의미와 해석은 각 개인의 감정에 영향을 주곤 한다. 어떠한 의미로 인해 누군가는 기쁘다는 해석과 함께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맛볼 것이다. 반면, 누군가는 슬프다는 해석에 사묻혀 비극적인 감정에 갇히게 될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의미와 해석 속에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지니나, 모든 각 개인은 서로 다른 삶의 주연으로서 다른 존재로 여겨진다. 삶이라는 것은 여러 의미와 해석을 통해 만들어진 감정선의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한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결말은 모두 다른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회는 이러한 개개인의 이야기를 존중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철학이나 가치에 의거해 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곤 한다. 대게 종교, 성별, 문화적 갈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사람은 때때로 '같다'라는 의미에 혼동한다. 같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동일해야 하며 공유해야 된다는 근거 없는 판단에 일반화된다. 같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모든 것이 동일해야 하고 그러한 동질적 삶의 방식이 꼭 공유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같아짐을 강요하는 요즘 사회는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하여 각 개인의 의미와 해석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기뻐해야 할 상황에 누군가는 기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슬퍼할 상황에 누군가는 슬프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종종 '저 사람은 이상하다. 우리와는 다르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척하고 밀어내며 날카로운 증오의 칼날을 들이민다. 행복 그리고 원망 등의 상반된 감정. 이것들은 반드시 어떠한 절대적 기준을 지니지 않는다. A는 반드시 행복한 감정을 유발하며,  B는 반드시 부정적 감정의 원인이 된다는 실증주의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의미와 해석을 통해 촉발된 감정은 절대적이라고 여기곤 한다. 이러한 일반화의 오류는 존중받아야 할 의미와 해석을 흑백논리의 기반으로 변모시킨다. 이러한 방식이 우리 사회에 너무나도 만연하게 퍼져있는 요즘이다. 모든 글의 주제가 된 愛(애정)과 空(공허)는 의미와 해석을 통한 감정에서 유발된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본질을 놓치고 만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비겁하며, 악랄하고, 지극히 모순적이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빼앗으며 살아간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이므로 옳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다만, 이것이 우리의 의미와 해석에 개입될 경우에는 안타까운 순간의 주범이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궁지로 밀어내고, 자신의 가치관의 보편적 확립을 위해 누군가의 의견을 묵살한다. 즉, 개개인의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통하여 누군가에게는 고독을 선사하고 타인의 행복을 방해하기도 한다. 살아가기 위해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까.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많은 이들이 고독하고 공허해지기보다는 애정과 행복에 둘러싸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러하기 위해 나는 기존의 우리의 삶이 지침이던 의미와 해석에 '가치'를 부여해 보면 어떨까라는 의견을 던진다. 누군가의 행동에 표면적 탐구로 인한 판단이 아닌, 드러나지 않은 이면을 직시하는 것. 어떠한 가치로 비롯된 행위인지 이해한 후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는 것. 오늘날 사회는 너무나도 병들고 곪아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예민해져 있다. 자신과 같아지는 것을 강요하며, 자신과 다른 이들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옳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고 박해한다. 너무나도 잔혹한 순간이지 않은가.

 우리는 의미와 해석에 살고 있다. 2024년 새해 첫 글을 다소 무겁게 가져간 이유도 필자에게는 어떤 경험적 의미에서 비롯된 해석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매 순간을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함에 살아간다. 지나간 한 해, 그리고 다가올 한 해. 당신들에게는 어떠한 의미와 해석이 부여될 것인가. 부디 그 해석이 타인을 밀어내고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 행복하고 안온하게 만드는 의미와 해석이 되길 바란다.

 이 세상이 진정으로 평화로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 사람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도, 재밌을 정도로 비슷한 누군가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같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을 공유하긴 불가능하다. 사회라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원인은 서로 다른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가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채로운 이유는 무수히 많고, 겹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자신의 색을 덧칠하기 때문이다. 의미와 해석의 집합체. 그것이 우리 개인과 사회, 그리고 세상을 구성하는 핵심이자 본질이다. 지금부터 새로운 챕터로 시작될 당신들의 이야기가 가치를 담고 있는 의미와 해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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