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노 Apr 20. 2024

모든 아버지께

:re (187: 아들에서 아버지)

 어릴 적 한 가지 궁금증이었던 것은 퇴근한 이후 아버지의 행동이었다. 많이는 아니지만, 매일 TV 프로그램에 맥주 한 캔을 걸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왜 저런 걸 매일 마실까'라는 의문을 품게 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나도 이젠 아버지처럼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삶의 무게란 것이 모든 것을 대변해 주진 않겠지만, 어느덧 나도 일상을 흘려보낸 이후 맥주 한 캔에 하루를 마무리 짓곤 하였다. 내 하루의 마지막이 매일 그 기다란 캔맥주는 아니었으나, 유독 피곤한 하루 끝에는 늘 그것이 함께였던 것 같다. 콜라, 커피를 넘어 잠깐의 쾌락을 선사해 주는 그다음 액체는 술이었다. 돌이켜보면 분위기를 전환하거나, 기분을 환기시킬 때에는 꼭 어떠한 액체에 의존했던 것 같다. 인간의 70%가 물이기에 그런 것이라곤 생각 안 한다만, 약간의 수분이 감정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약간의 흥미를 유발했다.

 

'왜 저런 걸 매일 마실까'라는 그 의문이 솔직히 지금도 해소가 되진 않았다. 음주를 즐기는 나조차도 왜 술을 즐기는지 알 수 없으니까. 적당한 양에 모든 걸 털어낼 수 있다, 비워낸 잔처럼 내 안의 응어리도 비워낼 수 있다고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주관적이라 생각한다. 물론, 어떠한 물질이 보편적으로 적용되진 않겠다만, 때로는 주관적인 관점보다 보편타당한 것이 더 깊은 의미를 지닐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고, 줄여야 함을 알면서도 줄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 독한 알코올의 도수보다 내가 견뎌내고 있는 무언가, 내가 짊어지고 있는 무언가의 도수가 더 독한 탓이지 않을까. 아버지 역시 그러하지 않았을까.


 자취를 할 당시에는 혼자 술잔을 기울일 때, 소주나 맥주보다 더 독한 양주를 많이 찾곤 했다. 온 더락, 칵테일로 음미했던 기억보다 니트로 즐긴 기억이 더욱 많다. 참으로 재밌는 것이 곧 입대를 앞두고 있어 주류를 즐길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그 맛있는 양주보다는 제일 맛없는 소주가 더 먼저 생각나는 요즘이다. 제일 많이 접한 탓인지, 오히려 자취 생활할 때 보다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낮은 탓인지는 불분명하다. 힘든 체감, 짊어지고 있는 것의 크기라면 오히려 지금이 훨씬 벅찰 것인데 말이다.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나타내진 않는 것 같다. 지금 나에게 누군가 딱 한 잔의 술을 권한다고 한다면, 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위스키의 한 잔이 아닌, 누군가 따라주는 투박한 소주 한 잔이 더 구미가 당길 것 같다.


 나는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 아닐까. 홀로 쓸쓸하게 한 잔을 비워내고 털어내야 했기에, 누군가와 함께 잔을 기울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감당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소주나 양주보다 더 도수가 낮은 맥주의 힘을 빌린 것일까. 어쩌면 누구보다 힘든 가장의 무게를 가족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더 독한 고량주를 즐기시니 말이다. 알코올에 의존하기보다는 그것이라도 없으면 정말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접근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아버지라는 가장의 무게를, 그 역할을 경험하지 못하였기에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공감하기란 더욱 어려움을 의미한다. 좋아하는 노래 가사 중 '너도 언젠가는 받아 아빠란 바톤 결국 돌고 도는 건가 봐 아마도'라는 가사가 있다. 바스코의 187. 혼자 술잔을 기울이면 참 많이 듣던 곡이다. 지금 이 노래는 내 아버지의 카카오톡 배경 음악이 되었다.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밥그릇을 지키는 건 수컷의 자격. 이 문장 역시 그 곡에 해당하는 가사이다. 술잔의 무게를 알게 되니 20대 후반에 가장이 된 아버지가 더욱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어려운 자리를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짊어졌다는 사실이 지금까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그러한 결정을 했는지 말이다. 물론, 시대는 변하고, 과거는 어떠했을지 알 수 없지만, 내가 20대 후반에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가장이 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때의 고됨을 이겨 냈기에 독한 양주가 아닌 맥주 한 캔에도 모든 것을 털어낼 수 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이 글을 내가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아버지께 바치고자 한다. 나는 아직 맥주 한 캔의 맛과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그 한 캔의 의미, 그리고 아버지가 느끼시는 한 캔의 의미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세대 차이만큼 큰 간격일 테니.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나도 언젠가는 돌고 도는 아빠라는 바톤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아버지처럼 존경받는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기보다는 아직 그 그릇이 되지 못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렇기에 도수가 낮은 맥주보다 가장 독한 양주에 의지하고, 의존했으니.


 이젠 술을 줄여보려 한다. 가능하다면 끊어보련다. 다음 달 국가의 부름을 받아 더 이상 힘들고 고된 하루를 녹색 병 하나 혹은 알루미늄 캔 하나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나의 힘듦을 술잔에 털어내고 비워내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나의 힘듦을, 내가 짊어진 것의 무게를 그 좋지 않은 액체에 실어 보내는 것은 훗날 내가 더 힘들고 무거운 짐을 짊어졌을 때 결코 굳세게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아버지와 술 한 잔을 주고받았지만, 조만간 한 번 더 그런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아직도 나에게는 어려운 아버지이지만, 가장이라는 것은 원래 어려운 위치니까. 바톤을 제대로 받기 위해 더 자주 곁에서 지켜보련다. 끝이 없는 릴레이이자 마라톤인 아빠란 삶의 바톤을 나 역시도 제대로 전달해 주어야 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개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