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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노 Apr 25. 2024

별을 쫓는 아이

:re (네 번째 별을 찾아서)

 2019년, 별을 쫓던 아이는 5년이 지난 지금 그 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에 뜨는지 알 수 없던 그 별을 찾고자 했던 그 호기심 많던 소년은 이제 그 별을 정확히 가리킬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별은 소년을 사랑했고, 소년은 별을 동경했다. 별은 소년에게 기대와 목표를 심어주었고, 소년은 별의 기대와 목표에 부합하고자 했다. 소년 주위에는 많은 별이 있었지만, 그 소년은 유독 그 별을 좋아했다. 서로가 닮아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그 별은 언젠가 소년과 저 넓은 은하수로 여행을 떠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소년 역시 그 별과 마주 앉아 그 무거운 성배를 함께 기울일 날을 위해 굳세게 살아갔다. 그 별은 참 대단한 별이었다. 자신의 가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족들의 무뚝뚝함을 서운해하기보다,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할 줄 아는 뚝심 있는 사내였다. 그 누구보다 오래 하늘에서 머물고 싶어 했던 그 별은 2019년 5월 21일, 그 안에서 돋아난 악의 뿌리를 뽑지 못한 채 따뜻했던 밝은 빛을 꺼버렸다. 그날, 그 별은 진정으로 저 넓은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별이 되었다.

별을 쫓던 아이는 활발하면서도 생각이 참 많은 아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애늙은이 소리를 들었던 탓은 나의 별이었던 할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식성, 행동, 성격 모두 나의 부모님보다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아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장손을 유독 예뻐하셨던 나의 별은 가장 견디기 힘들다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가장 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했던 분은 바로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참 좋아하셨다.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신 할아버지는 다른 형제들보다 유독 학구열이 강하셨다고 하셨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학구열은 참으로 대단하셨고, 어린 시절 나에게 역사를 가장 많이 가르쳐 주신 분도 바로 할아버지셨다. 나는 그러한 할아버지가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어른이면 다 할아버지처럼 멋진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평범한 어린아이는 별을 쫓는 아이가 되었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처럼 공을 차며 놀고 게임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나를 보러 오시는 날은 최대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 노력했다. 할아버지께서 이루지 못한 꿈을 내가 이뤄드리고 싶었다. 목표가 생겼다. 할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자랑할 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별이었다. 첫 번째 별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초등학교 전교회장을 할 수 있었으며, 중학교 시절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교우관계도 좋았으며, 나쁜 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시점에 나의 새로운 목표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언젠가 할아버지와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이었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별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고기를 정말 좋아하셨다. 날씨가 좋은 일요일이면 점심에 가족들과 할아버지 집 마당에 모여 앉아 고기를 구워 먹곤 했다. 종종 나만 따로 불러 고기를 함께 구워 먹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기도 하였다. 내가 분위기, 그날의 바람, 소리와 냄새까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소원이 있다면, 이때의 어느 날로 돌아가 잠시라도 좋으니 할아버지와 술 한잔 하며 진득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다.


 할아버지께서는 '너 장가가는 건 보고 가야지.'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별을 쫓던 어린 그 소년은 그때 당시 그 말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대학교도 진학하지 않은 나에게 결혼은 너무나도 먼 이야기였기에. 그러나, 할아버지께서 췌장암 판정을 받으신 이후 그 말은 '너 대학 가는 건 봐야 하는데.'라는 말로 바뀌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때부터 무언가 불안하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어렸기에 췌장암이라는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없었다.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췌장암 판정 사실보다 할아버지의 단골 멘트가 바뀐 순간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정말 누구보다 오래 살고 싶어 하셨다. 그 이유는 아마 나의 미래를 더 오래 보고 싶으셨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할아버지께서 완치는 되지 않으시더라도 하루라도 더 오래 사시는 것,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는 것. 그것이 나의 세 번째 별이었다. 하지만, 내가 쫓던 별 중 가장 만나고자 했던, 가장 원했던 그 별은 그 어떤 별들보다 더 빨리 사라졌다. 항암 치료를 받으신 후로 할아버지께서는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가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엄청나게 힘들고 아프면 저렇게 빨리 살이 빠질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가장 아쉬운 건 할아버지께서 건강하실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암이라는 악의 뿌리를 견디기 힘들어하셨다. 할아버지께서 대학 병원에 입원하시고,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급히 병원으로 발을 옮긴 날, 난 아버지의 눈물을 살면서 처음으로 마주했다. 이날부터 내 세 번째 별은 보이지 않았으며, 별을 쫓던 그 아이의 발걸음도 굳어버렸다. 마음의 준비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깨우친 순간이었다.


 별을 쫓던 아이는 결국 자신의 마지막 별을 쫓지 못하였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 소년을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바로 다름 아닌 그 별이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그 별은 슬픔에 빠진 소년 앞에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소년은 별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가장 동경했던 별이 가장 찬란히 빛나는 순간을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소년에게 별은 괜찮다는 듯 미소를 건네며 소년이 움직일 수 있도록 조금씩 걸음을 옮겨주었다. 울음을 그치고 그 별의 속도에 맞추어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할아버지의 마지막은 그 무엇보다 차갑고 딱딱했지만, 웃고 계셨다. 고통 속에 쓸쓸하게 별이 되신 표정이 아닌 편안하게 별이 되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최근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는 할아버지께서 오래 병동 생활을 하지 않으셨으며, 아프다는 말씀도 단 한 마디 안 하셨다고 한다. 아픔을 참고 말씀을 안 하신 것일 수도 있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이 끝없는 고통이 아니었단 사실을 깨닫고 난 그 소년은 그날부터 그 별과 나란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소년은 2021년,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3년이 더 지난 2024년 이제야 나는 그 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에 대한 슬픈 생각만 가질 뿐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날의 나의 별이 어떠한 심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을지 생각하곤 한다. 곧 별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셨을 나의 별은 나에게 어떠한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까. 감히 예상하건대,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 그리고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다. 나는 그 누구보다 할아버지와 가장 닮은 사람이니까. 할아버지 기일을 치른 6일 후 나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나라에 헌신하러 가야 한다. 정말 가기 싫었지만,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독한 췌장암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이겨내신 분이니까. 또한, 가족과 나라를 위해 월남전에 참전한 진짜 군인이자 용사이시니까. 그런 나의 별이 나와 함께 걷고 있으니까. 이러한 생각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요즘 진짜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틈틈이 공부도 하고자 한다. 별을 쫓던 아이에서 별을 가리킬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내가 쫓아야 할 별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내 옆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그 별이 어느 순간 저 멀리 나아가 나에게 오라고 손짓할지 모른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 빠르고 강하게 달려야 한다. 나의 별이 별이 되신 순간, 내가 느낀 것은 가족 내력으로 인한 두려움이 아닌, 그 어떤 아픔도 굳세게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근성이다. 나의 이 정신과 마음가짐, 그리고 투지가 내 옆에 찬란히 빛나고 있을 그 별을 더욱 밝혀주리라 생각한다. 먼저 은하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별을 위해 더 강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그 별이 나와 함께 떠나고 싶어 하던, 그 은하수에서 울려 퍼지는 별을 쫓던 아이의 자랑이 나의 귀에 닿기까지, 다시 한번 별을 쫓는 아이가 되어 힘차게 별들 주위를 누벼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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