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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노 Oct 02. 2024

가을안부

D+129 (무거운 것일수록 더 깊게 기억되는 법)

 날이 갑자기 추워진 것 같다는 생각은 이제 기분 탓이 아니게 되었다. 분명 2주 전까지만 해도 에어컨이 없이는 근무를 서지 못할 것 같은 환경이었는데, 요새 세상이 참 빨리도 변한다고 느꼈다. 선선하다 못해 추워진 날씨가 평소였다면 원망스러울 터.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를 본 것 같은 반가움은 어떠한 이유에서였을지. 선선하고 포근한 날씨를 충분히 즐기는 못하는 상황 탓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사계절 용 겉옷을 입은 채 밖을 나가도 살갗을 때리다 못해 안으로 스며들어온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때의 공기가 너무나도 좋다. 좋다 못해 그립고, 간직하고 싶고, 이를 넘어 사랑한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시원함을 약간 넘어 쌀쌀한 바람에 힘입어 꽤나 건조한, 때로는 약간의 탄내 혹은 숲의 향기를 머금은 그것. 이내 내 코와 입으로 자연스레 흘러들어오는 그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찬 바람을 전부 맞아가며 근무를 서도 괴롭다기보다는 즐기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며칠간 선선하고 포근했던 날이 전혀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닐까.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묻거든 나는 늘 그래왔듯이 고민조차 하지 않고 '봄'이라고 답하겠지. 다만, 내가 사랑하는 이 공기와 바람을 머금은 계절은 봄보다는 늦가을 혹은 초겨울에 가깝다. 물론, 초봄에도 이러한 공기가 불긴 하겠다만, 지금과는 사뭇 다른 향을 품고 있다. 좋아하는 계절과 좋아하는 공기의 상이함. 나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모순적이기보다는 내가 살아왔던 역사를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이때의 공기와 바람에 사랑에 빠진 이유는 사실 그리 특별하지 않다. 그저 그 공기를 맞아가며 자라왔을 때의 기억이 가장 선명하니까. 그저 그런 하찮은 이유이다. 조금 더 구체화하자면, 그때 행복한 기억들이 가장 많았으니까.

 온갖 찬 바람을 다 맞아가며 신나게 공놀이를 한 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버스비 2천 원을 아껴 사 먹은 얇은 호떡 3개와 어묵 2개. 그리고 입안의 기름기를 더 해준 따뜻한 어묵 국물 한 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시린 온몸을 달래준 건 음식보다는 소소한 행복 덕이겠지. 그 당시 좋아했던 여자애와 함께 걷던 중 편의점 앞에서 파는 따끈따끈한 팥 호빵 하나. 그리고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웃고, 함께 미래를 약속했던 그날. 그 어느 때보다 콩닥이던 내 안의 소리가 그 여자애에게 닿았던 이유는 분명 호빵만은 아니었겠지.

 분명 올해 여름에는 피우던 담배의 종류가 바뀌었을 터. 이날의 이 공기가 찾아오니 어김없이 내 손에 들려있는 한 가치의 그것은 그 시절의 그것과 참 많이 닮아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던 기억만이 어묵 국물과 반으로 가른 호빵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난다. 분명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말이다. 어느 날은 주머니에 꼬깃꼬깃한 천 원 한 장 없어 호떡과 어묵은커녕 버스도 타지 못한 채 찬 바람을 뚫고 어딘가로 향했을 것이다. 더 이상 그 여자애와 단둘이 무언가를 나누어 먹는 일 또한 없었겠지. 다만 그것들은 부정적인 꿈처럼 전혀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계절은 돌고 돌아 언젠가 내 곁을 떠나간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다시 나에게 다가올 것임이 분명하다. 이 공기, 이 바람도 분명 그럴 것이다. 떠나가지 않길 바라지만, 보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도 그러하겠지.

 그 어느 때보다 내가 가장 뜨거웠을 때. 따뜻했을 때. 나는 이것들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기에, 약간은 쌀쌀하고, 탄내와 약간의 숲 향이 담긴 그 공기를 마주하러 그 어느 때보다 얇게 입고 문밖으로 향한다. 내 삶의 그 어떤 순간보다 그 시절의 기억, 그 시절의 나를 더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게. 그리고 다시 한번 깊게 들이마시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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