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을 내딛기로 했다

D+200 (re: start)

by 마노

며칠 전에 첫눈이 내렸다. 남들은 유독 추웠다고 하더라. 난 유독 포근했던 것 같은데. 입동이라는 날이 있지만, 나는 첫눈이 내린 후에야 비로소 겨울이 왔다고 느낀다. 나의 겨울, 올해의 마지막을 알리는 듯 그 하얀 진눈깨비는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리다 못해 소복이 쌓였다. 마치 나에게 그것이 왔다고 확실히 전하려는 듯.

잠시의 포근함과 달리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매서운 칼바람이 나의 뺨을 스쳐간다. 뭐든 처음만 어렵지 그 이후엔 쉬워진다는 표현은 참 잘 만들었다고 느꼈다. 포근하고 따뜻한 날을 바라왔던 건 아니었지만, 너무 갑작스레 온 추위는 나를 충분히 당황하게 했다. 아 이것이 성급하고 앞서만 갔을 때의 결함인가 싶었다.

내 어깨를 그것이 포근하게 덮고 난 이후로 내 가슴에는 줄 하나가 더 그어졌다. 책임져야 하고 견뎌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느꼈다. 무언가를 얻게 되었음에도 그것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더 높은 곳으로, 곧 나아갈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인내하고 떠맡아야 할 것이 늘어났다고 느꼈다. 이게 나이를 먹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남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해 금방 높은 곳에 도달했으니.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난 그 위치를 지켜야 하는 기간이 더욱 늘어났다는 말이 된다. 정상에 올라 계속 아래를 내려다봐야 하는 것. 올려다볼 때 와는 사뭇 다른 목의 피로감을 주었다.

내 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간다. 많이 의지하던 누군가도 곧 떠나간다고 하더라. 떠나는 것이 부럽기보다는 무언가를 이루고 떠난다는 그 사실이 부러웠다. 난 꼭대기에 오래 머물며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고지대의 바람은 더욱 추운 법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더 단단히 껴입어 감당해야 할 채비를 더 견고히 해야 했다.

이곳에서는 더 오를 곳이 없다. 아마 더 오를 일은 존재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왜 생기지 않을 길과 최정상을 바라보며 나아가고자 하는 것인가. 누군가에게 붙잡히는 두려움, 정체된 순간에 직격으로 맞는 눈보라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 그 무력감. 이 무력감이 나에게 던진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견고히 준비한 이들, 체온을 더 강하게 유지한 이들이 내 발아래에 있다. 그들을 보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난 지금 내 자리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눈이 되어보고자 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이목을 끄는 첫눈이 되기로 했다. 조금 늦은 나의 올해가, 그리고 나의 겨울이 시작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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