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색을 입힐 필요가 있다. 오로지 현재에 머무르며 안주하기보다, 유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장점이 될 수 있으니.
지금까지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고 느낀다. 때로는 격정적으로 끊임없이 분출했다. 또 어떤 날은 그 어떤 심연보다 깊게 가라앉아 인내하며, 묵인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이러한 나의 색채는 '개성'이 아닌 '혼탁'이 되었다.
휘둘리지 않고자 유순하게 대처해 왔던 것들이 오히려 나를 향한 칼날이 되었다. 이는 무디고 뭉툭하기보다는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다가와 내 안을 마구 베었다. 종이에 베였을 때의 감각을 알고 있는가? 인지하기 전까지는 통증조차 없을 터. 상처를 확인한 이후에는 살갗을 파고드는 쓰라림이 몰려온다. 늘 상호작용하는 공기와의 마찰이 이토록 고통스럽다는 것을 처음 겪게 되는 순간이다.
벌어진 틈은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작은 틈은 점차 영역을 넓히며 낙인이 된다. 이러한 낙인은 곧 흉이 되고, 이는 크나큰 흠이 되고 만다. 예리한 그것의 가벼운 인사는 누군가에게는 안녕을 되묻게 하는 심각한 파장을 불러온다. 흠은 고민을 불러오고, 틈이 생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제 나는 온전한 나인 것인가'
우리는 무언가를 구매함에 있어 그것의 값어치를 염려하곤 한다. 지불하는 금액보다 구매하고자 하는 어떤 것이 더 높은 가치를 띄는지에 대한 것. 월등히 높을 경우 우리는 충동적으로 손에 넣고자 한다. 반대로, 아무리 적은 지불액이라고 할지라도,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거나 없다고 판단될 경우, 가차 없이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틈이 생겨 흉이 되고, 흠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 것을 과연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반대로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너무나도 깔끔하게 베어지고 벌어져 속내가 드러났을 때, 내 몸속을 탐험하는 혈액의 색은 확인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어떤 홍련보다 붉게 타오를 수도, 아픔을 인내한 탓에 검게 물들어 탁한 검정과 빨강 그 사이 어딘가의 채도를 나타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되묻는 물음은 타인이 만들어낸 손상으로 나의 가치를 내가 폄하하는 게 옳은가에 대한 고찰이다.
특출 나게 무언가를 잘하지는 않더라도, 전방위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나의 강점은 도드라진 매력이 아닌, 은은하게 널리 퍼지는 향수이길 바랐다. 이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자주 살폈던 것도 사실이다. 개인기가 뛰어난 역할이기보다, 전방위적으로 헌신하는 역할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시야가 넓어졌다는 긍정적인 면모는 타인의 눈치에 내 플레이를 제대로 못했다는 부분에 완전히 묵살되었다.
다시 벌어진 틈, 흉터, 흠. 그리고 낙인. 개성이 아닌 혼탁을 인지하고, 주변의 시선을 마주하며 삼켜내는 위축감과 오기. 내 몸에 새겨진 예리한 칼날 자국보다 더 강하게 긁혀버린 내 자존심. 다시 한번 되묻는 진정으로 나다운 건 무엇인가.
새로운 색을 버리자.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전방위를 커버하던 습관을 잠시 내려두자. 때로는 완고한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여러 고민을 시작으로 얻은 높은 수준의 사유와 깨달음. 진정으로 나다운 것이란 맞춰가기보다는 이끌어가는 것. 시선을 살피며 후방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보기보다 전방에서 선봉대가 되어 진두지휘하는 것. 가장 자신 있고 잘하던 것을 왜 그동안 놓치고 있었을까.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증명하는 것. 스스로를 믿고 자신하는 것. 나의 가치에 내가 스크래치 내지 않는 것. 이들을 바탕으로 가장 나다워지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시 한번 시작해 보는 것. 하기 싫다가 아닌 해야 하는, 온 근육이 찢어질 때까지 내달려보는 것.
진정으로 나다운 것이란 느끼고 얻은 감정들을 내뱉고 승화하여 흡수할 수 있는 행위. 내가 가장 잘하는, 잘해왔던, 오로지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