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95 (절반을 기록한 시점에서)
최근에 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도쿄로. 휴가를 털으라는 상부 지침 때문이 아닌, 그저 어디론가 멀리 훌쩍 떠나고 싶었다. 생각이 많아진 나의 하드를 정리하고 비우며 게워내고 싶었다. 행선지가 북적이는 도심지인 이유 역시 정리하고 비우며 게워내고 싶었기 때문에.
즐거웠다. 일본어로는 "楽しいかった"라고 한다더라. 알고 있는 말이었음에도 현지인에게 직접 들으니 감회는 새로웠다. 마치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릴 적 간식을 어머니가 아닌 누군가가 더 비슷하게 만들어준 것 같았다. 6박의 시간을 여유로우면서도 바쁘게 보냈다. 전혀 아쉽지 않았음에도 약간의 후회가 남는 것을 보아하니,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졌다.
이번에도 역시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춤추고 노래하기도 하고, 술잔을 가볍게 부딪히며 시간에 몸을 맡겼다. 인종, 성별, 나이, 국적 모두 상이한 그들이었으나, 일관된 것은 그 순간만큼은 나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 그렇기에 그들과 웃으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홀로 해외에 발을 디딘 것이 처음이 아닌 탓에 더욱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떤 인연이 찾아올지에 대한 미지의 설렘, 자유의 만끽. 가장 혼자였지만 가장 사회적이었던 순간. 그것은 내가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귀인을 특히 더욱 많이 만났다. 사진 명소에서 선뜻 말을 건네 사진을 찍어준 이들, 카드만 가능한 식당에서 선뜻 밥값을 지불해 준 누군가. 그리고 여행 도중 함께 시간을 종종 보내고 흔쾌히 술 한 턱 내어준 몇몇 친구들. 축적된 경험은 무용담이 되어 값비싼 안주의 대체품이 될 수도 있었지만, 난 그것을 고이 접어 온전한 나의 일부로 넣어두었다.
이 글의 주제는 '여행' 이라던가 '일기' 같은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최근 경험이 하나의 작품으로 건설되는 이유는 '시간과 돈에 대한 고찰'에 있어 어떠한 질문을 던져주었기에. 그 질문이 온전한 나의 일부이기보다는 하나의 담화가 되어 가벼운 술자리에서 오가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왜 늘 시간과 돈에 쫓겨사는가.
대표적인 예시로 여행이 있겠지. 누군가는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얻어 갈 수 있는 경험들을 뒤로 미루곤 한다. 그 뒤의 끝이 어딘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내가 첫 여행을 결심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고작 100만 원이라는 돈은 네가 나중에 하루 혹은 한 시간에 버는 돈이 될 수도 있는데. 너는 왜 고작 그 푼돈 때문에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을 등지려고 하니." 이 말을 해준 대외활동 과장님은 그때를 기점으로 스승이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너무 많은 것을 놓치며 살아간다.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극명한 경계선과 이분법적 사고로 반드시 두 가지를 분열해 생각하곤 한다. 해야 하는 것의 일부가 하고 싶은 것일 수도, 하고 싶은 것 중에 해야 할 것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꼭 가봐야 하는 핫한 식당을 가지 않아도 좋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핫플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느긋하게 긴 여행을 갈 수 없어도 괜찮다.
짧은 일정이 더 알찬 순간을 보여줄 수도 있으니.
사뭇 다른 생각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결괏값을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놓치며 살아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꽃이 피기 전에는 돈이 없기에 시간으로 돈을 사려하고, 시들기 직전에는 시간이 없기에 돈으로 시간을 사려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꽃은 대체 언제 피는가. 만개(満開) 할지라도 우리는 돈과 시간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을 해본 이의 시간-돈거래는 해보지 않은 이들의 거래보다 훨씬 더 가치 있으리라 자부한다.
지금 나는 아직 활짝 핀 꽃이 아니라고 느낀다. 점차 무르익어가며 어느 날 저 따스한 태양을 조우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았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지금 내 시간은 그 어떤 누군가의 시간보다도 더 값질 것이다. 활용 가능한 시간 그 자체가 어떠한 금괴보다 귀하게 여겨질 것이다. 이것이 내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경험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누구보다 크고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한 태동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