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과분한 것인가

D+266

by 마노

꿈을 꾼다는 건 과분한 것인가. 어제 누군가와 오래간만에 전화를 했다. 안부를 묻는 목적보다는 누군가의 상태가 이상했기에. 평소와 다르지 않았음에 별안간 기이함을 느꼈다. 고민조차 하지 않고 눌러버린 뒤 기다렸다는 듯이 연결된 전화. 전화를 받은 뒤 첫 대답은.

밝은 목소리 뒤에는 불안한 듯한 떨림이 미세하게 남아있었다. 늘 페르소나를 씌우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에게도 당연한 일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본 적 없는 페르소나. 직설적인 솔직함이 나의 장점이거니와 모른 척 지나갈 수 없었기에 던진 한 마디. "요새 많이 힘들어?"

펑펑 울었다. 흐느끼는 것이 아닌 통곡에 가까웠다. 나는 처음으로 그 누군가에게 "당황"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직설적인 한 마디에 솔직한 본심이 드러났으니. 일단 얘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진정하라는 말에 대한 대답은 요 몇 달간 계속 진정하고 있다는, 약간은 언성이 높아진 것 같은 그런 것. 아아, 페르소나가 드디어 벗겨졌구나.

사실 그 이후 대화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지. 그때 일을 無로 만들고 싶어 한 누군가의 바람이 있었으니. 그럼에도 약속을 어기지 못한 채 여기에 회고하는 나를 원망하는 것에 큰 불만은 없다. 다만, 원망을 한다면 이 글은 꼭 보았으면 한다.

기억하지 않으려, 없었던 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강력하게 꽂힌 문장이 있다. '꿈을 꾼다는 건, 내가 꾸는 꿈은 나에게 너무 과분해. 그렇지 않니? 너무 과분하잖아.' 말할 수 없었다. 정말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에. 꿈을 꾸며 살아가는, 꾸기 위해 살아가는 몽상가인 나에게는 해본 적 없는 생각이니까. 생각하는 순간 나를 부정하는 꼴이 되니까.

꿈이라는 건 뭘까. 이다음 문장을 적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무언인지 명백하게 대답할 수 없었음에도 무언가를 대변해 표현했다. 여행이라던가, 성공이라던가. 그렇다면 꿈이라는 건 꼭 무언가를 대변해야 하는가.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걸 좇고 있는 나조차도 내가 꾸었던 모든 것들이 과분한 것인가.

어제의 일이 누군가에게는 악몽일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수치일지라도 나는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적어야 한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흐느끼고 통곡하는 대상이 내가 되지 않으려면..

사실, 아직까지도 누군가가 왜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과분하다고 표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가지지 못한 것을 좇는 것은 당연하다고 느끼니까. 당연한 것이 과분한 것이 된다는 것. 참으로 모순적이지 않은가. 아아, 그 정도로 지쳐버렸구나,

오늘은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어제의 사건 때문이 아닌 단순 새벽 근무가 있었기에. 18시에 일어나 저녁을 조촐하게 때우고 다시 잠을 잤다. 21시에 일어나 청소를 미루고 또다시 잠을 청했다. 일어난 시간은 23시였다. 꿈을 꾸었다. 내가 엄마 품에 안겨 대성통곡을 하는 그런 꿈. 뭐 때문에 울었는지, 꿈의 내용이 전부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소름 돋게도 내가 울었을 때를 떠올리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울고 싶어진달까 슬퍼진달까.

다시 한번 그 꿈을 꾸길 바란다.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때의 엄마의 표정, 말들이 생각나지 않으니까. 아, 이제야 알 것 같다. 꿈은 과분할 수도 있겠구나. 누군가는 이런 꿈을 매일 꾸었을 수도 있겠구나.

가지지 못한 걸 갖게 되는 것 혹은 불가능한 걸 실현하는 것이 꿈이라면 나는 꿈을 계속 좇으리라. 누군가는 과분하다 말할지라도 손에 넣어보리라. 나의 전진이 비로소 결실이 맺을 때, 누군가는 그 과분한 꿈에서 깨 더 높은 곳을,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꿈이 과분하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매일매일 더 과분하다고 느껴지는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어제의 그 일이, 누군가의 눈물이 그저 다시는 얻을 수 없는 과분한 꿈이길 바라며.


매일매일 과분한 내가, 과분하지 않길 바라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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