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40 (Ep.1 Prolog)
오늘은 어딘가의 누군가가 죽었다. 어제는 어딘가에서 큰 사고가 났다. 이틀 전에는 또 어딘가에서 큰 불이 났다. 새로운 일든은 매일 어딘가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때마다 늘 다양한 것들을 마주하곤 한다. 지나치게 이성적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 생각도 없이 양 측 모두를 비난하거나.
우리는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혐오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높은 자살률, 세대 그리고 성별의 갈등. 늘 만연했던 정치적 양극화. 우리는 홀로서기를 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타인 혹은 어떠한 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갖곤 한다.
별것 아닌 일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원만하던 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고 회피하고자 하는 부류가 주류가 되었다. 무슨 일이 터졌을 때 득달같이 덤벼들어 서로 헐뜯기 바쁜 사회가 되었다. 과연 이러한 행동들에 합리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누군가의 입장. A 때문에 속상하고, B로 인해 격분한 채 결국 상실감을 겪는 C. 이러한 과정이 오로지 소수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골치 아픈 상황이다.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대화'가 필요하다.
한 사람이 일생토록 겪는 감정의 변화 또는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누적된 경험을 다른 누군가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반대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에 섣불리 공감하는 것은 진정으로 그들을 느끼기보다는 '공감한다'는 사회적 행위의 터무니없는 발산이다. 가장 크게 변화한 오늘날의 특징은 대화와 더불어 '무조건적인 공감'과 '무미건조한 이성 혹은 이해'가 아닐까.
각자의 삶을 향유하며 진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 기억이 몇이나 되는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 기억은 또한 몇이나 되는가? 우리는 종종 대화 자체를 시작하기도 이전에, 마치 이미 판단이 다 되었다는 듯 모든 것을 지례 짐작하며 행동한다. 실제 담화에서,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고, 나의 의견을 진실되게 표명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가장 큰 것은 나의 판단이 처음부터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나는 아직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른다는 깨달음.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비난하고 뒤에서 조롱하는 것이 단순 유희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헐뜯고 비방했을 때 전해지는 원초적 쾌락에 의한 것이 아닌, 무비판적인 태도로 경멸하고 중상모략한 채 상황을 바라보는 일들이 많아졌다. 즉, 어떠한 이유에서 무언가를 싫어하기보다 일단 싫어하다 보니 이유가 생긴 사람들이 만연해졌다.
어릴 적 내가 꿈꾸었던 세상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 부활한 공룡이 전시된 동물원 같은 게 아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세상이었다. 그것이 진정한 어른의 삶이라고 여겨왔다. 부끄러운 상황을 모른 척 덮어주고, 불만을 뒤에서 곱씹는 것이 아닌 탁 트인 자리에서 함께 논의하는 건설적인 태도. 나아가 사랑이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있는 세상. 그 세상 속 주연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의 토로가, 나의 언어가, 그리고 문장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가 될 때, 어떤 누군가 또한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할지도 모른다. 혐오가 당연해지는 세상이 단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더 많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이미 바뀐 세상을 다시 한번 갈아엎자고 들고일어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질지도 모른다. 나의 피력이, 나의 진심이 그리고 나의 바람이 지금 여기서부터 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