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66 (사라질 나를 위해, 남겨진 나를 위해)
피는 것이 있기에 지는 것이 있다. 낮이 있기에 밤이 있듯, 밝음이 있기에 어두움이 있다. 그 사이 무수히 많은 별과는 상관없이. 태어나는 것이 있기에 죽음 또한 존재한다. 돌고 도는 자연의 섭리. 순환. 우리는 어떠한 이유에서 이것들은 곱씹으며 살아가는가.
누군가가 떠났다. 누군가는 곧 떠날 것이며, 나 또한 떠나갈 채비를 마쳐야겠지. 발걸음을 돌려 누군가에게 내 등 뒤를 보인다는 것은 과연 큰 의미가 있는 것일까. 믿고 맡길 누군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살아가며 많은 것을 두고 온다. 물질적인 것, 감정과 같은 물질적이지 않은 것. 그렇다면 내가 두고 온 그날의 기억은 어디에 해당하는가. 만질 수 없기에 비물질적인 감정일까. 혹은 무언가를 형성했기에 물질적인 어떤 것일까.
남겨진 것들을 맛보고 섭취하는 이들이 있기에 두고 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선례의 발자취를 따라 '나 역시도 그래야지' 혹은 '그러지 말아야지'의 이분법적 사고를 채택하게 된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그것들을 혹은 그 사람들을 어떠한 양분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것이 더 우선이기에.
소속된 곳에서의 이탈, 즉 여정은 많은 기억들을 회상하게 할 것이다. 좋았던 날의 기억들, 누군가와 함께 나눈 자리. 그 속에서 나누었던 대화들. 이것들을 고이 모아 간직하는 것은 떠나간 이들이 아닌 남겨진 누군가의 몫. 또한, 이것들을 정돈하여 그대로 두고 같은 행보를 보이는 이들. 이러한 순환을 우리는 왜 이토록 특별하게 여기는가.
남겨진 자들이 있기에 떠날 수 있는 것을 아닐까.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떤 이의 존재가 나의 떠나갈 명분과 채비를 마련해 주는 것은 아닐까. 더 넓고 밝은 곳으로 혹은 더 좁고 어두운 곳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 과정에서 의미 있고 설렘을 느끼는 것은 내가 곧 그곳에 남겨질 자이기에 그러한 것은 아닐까.
아름답게 저물고 싶다. 그 누구보다 우아하게 피어난 꽃은 아닐지라도, 그 어떤 이보다 아름답게 떨어지고 싶다. 과한 보살핌을 받은 꽃들보다는 투박하게 피어났을지라도, 꽃인지 열매인지 모르게 피어났을지라도, 내가 남긴 꽃잎과 허물들이 누군가의 굶주림을 해결하길 바란다. 나의 존재는 누군가의 기억이 되어 깊게 새겨질 각인일 것이다. 나에게 남겨진 그들의 이름이 깊게 새겨져 내 안의 그 어느 것이 되었듯이. 나도 누군가의 일부가 될 수 있기를.
<사라진 것들에게,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게.>
나아가, 사라질 것들을 위해, 남겨질 것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