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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노 Sep 17. 2023

거미

愛 (당신들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애정을 갈구하는 동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거미'라고 답할 것이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하필 많고 많은 동물 중에 거미인가?' 사람들의 시선은 각자 다를 수 있다만, 나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동안 거미를 바라보던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지금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거미는 얼마나 애정을 갈구하는 동물이며, 그로 인해 어떤 사랑을 하는지에 관한 서술이다. 愛 (애정)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이 거미 때문인데, 거미와 같은 사랑을 하는 이들은 어떤 이들이며, 거미의 사랑은 과연 어떠한지 각자의 가치관을 가져보길 바란다.
 왜 거미는 애정을 가장 갈구하는 동물인가? 우선 필자는 동물, 그중에서도 육식동물이 먹이를 포획하고 섭취하는 방법. 다시 말해 영양분을 얻는 과정을 애정을 필요로 하는 움직임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사자와 화랑이 같은 최상위 포식자들은 직접 사냥을 하여 먹이를 잡는다. 숨어서 기회를 엿보다 덮치는 경우도 있으며, 추격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포식자들의 움직임은 '능동적인 사랑의 형태'이다. 마음에 드는 먹잇감을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포획하고자 숲에 몸을 숨기고 낮은 자세로 접근하다 한 번의 기회를 포착한다. 준비 태세가 갖춰지지 않은 이른바 먹잇감들은 이에 대처하지 못하거나, 대처하여도 그들의 기세에 밀려 포획당하곤 한다. 능동적 사랑이란 마음을 얻기 위하여 직접 움직이는 것. 다시 말해, 마음에 드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 대상을 티 나지 않게 관찰하고 분석하며, 자신을 낮춰 상대를 겁먹게 하지 않으며, 직접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움직인다. 물론, 너무 급진적이기에 한 번의 실수를 야기할 시 대상을 놓쳐버리곤 한다. 즉, 그들의 경계를 유발하고 멀어지게 되며, 다시 그 대상에게 애정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능동적인 사랑은 종종 '이기적인 사랑' 혹은 '배려가 다소 부족한 사랑'이다. 대상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숨기며 그들에게 접근한 뒤 영문도 모른 채에 덮쳐지는 것. 먹잇감들의 입장에서 능동적인 사랑의 형태를 취하는 최상위 포식자들은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거미는 최상위 포식자인가? 그렇지 않다. 물론, 거미들 중에서도 능동적인 사랑을 취하는 종들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거미는 그러하지 않다. 예를 들어, 타란툴라 혹은 농발거미 같은 종들은 자신의 신체적 강점을 이용하여 먹잇감을 직접 사냥하지만, 대부분의 거미는 그렇지 않다. 즉, 거미는 능동적인 사랑이 아닌 '수동적인 사랑', '수줍은 사랑'을 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거미를 가장 애정을 갈구하고, 필요로 하는 동물로 보았다. 포식자, 육식동물의 대부분은 직접 움직여 사냥을 한다. 하지만, 거미는 조금 다른 형태로 먹잇감을 포획한다.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여 줄을 만들고 그 줄 위에서 먹잇감을 기다린다. 줄을 치는 행위는 거미에게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거미는 먹잇감을 섭취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다시 줄을 치는 것이다. 이러한 거미의 사냥의 형태는 매우 수동적이다. 끊임없는 기다림, 누가 올 줄 모르는 불확실함, 먹잇감이 걸려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렇지만 거미는 꾸준히 줄을 치고, 꾸준히 기다린다. 능동적 사랑을 하는 다른 포식자들과 달리 하염없이 기다리는 존재. 그것이 거미의 사랑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거미를 다소 미련하고, 답답하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거미는 참으로 '순수하게'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미의 사냥 형태는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사냥감에게 큰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 직접 덮쳐서 공격하는 행위가 아닌, 자발적으로 덫에 걸려들게 하기 때문에 거미는 그들보다 사려 깊고, 이타적인 배려적 사랑을 한다. 그렇기에 이에 따른 리스크는 애정을 직접 얻기 어렵다는 것. 자신의 마지막 에너지를 소비하여 줄을 쳐도 먹잇감이 걸려들지 않는다면, 거미는 더 이상 영양분을 얻을 수 없다. 애정을 받지 못하여 마지막으로 용기 내어 자신을 헌신하고 소비해 타인을 기다렸을 때, 애정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기다렸을 때,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거미는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죽고 말 것이다. 자신을 소비하여 최소한의 애정이라도 받고자 하는 거미는 자신의 줄 위에서 애정과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거미의 사랑을 듣고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가? 많이 안쓰러운가? 하지만 거미도 완벽한 사랑을 하는 존재는 아니다. 거미줄에 먹잇감이 걸려든다면 이후의 거미 행동은 어떻게 변하는가? 매우 폭력적이고 거침이 없다. 즉, 포식자의 본능인 '능동적인 사랑'의 형태가 표출된다.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거미에게 연민 혹은 동정을 느끼고 접근한 이들은 그 줄에 걸려들었을 때, 더욱 거세게 발버둥 친다. 자신이 알던 존재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줄에 걸린 이들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강하게 속박된다는 것을 자각한다. 줄에 걸려든 이상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대상을 거미는 자신의 욕망대로 애정을 갈구한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대상을 탐한다. 그동안 받지 못한 애정을, 사랑의 감정을 다소 강하게 표출한다. 이러한 거미의 행동은 '집착'에 가깝다. '너를 기다렸기에, 너를 사랑하기에'라는 이유로 줄에 걸려든 이들의 자유를 빼앗고 천천히 잠식시킨다. 그렇기에 거미는 '수동적이고 수줍은 사랑'을 하는 존재이며,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위험한 사랑'을 한다. 본인이 그동안 보여주던 사려 깊고 배려 있는, 기다리고 존중하는 태도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이기적이며, 폭력적이고, 거칠며 본능적이다. 그렇기에 결국 능동적인 사랑을 하는 이들보다 더욱 이기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거미는 다른 포식자들과 달리 원하는 대상의 마음을 직접 움직이지 못하고, 자신을 소비하고 헌신하여 누군가의 애정을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 또한, 다른 누군가의 의도치 않은 공격이나 주변의 상황으로 인하여 외로움을 견디며 지었던 줄이 무너질 수도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먹잇감들의 관심조차 받을 수 없거나 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고독한 사랑을 애달프게 해 왔기 때문에, 거미의 사랑은 위험하게 변한 것이 아닐까. 그저 서툴고 수줍기에 누군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던 거미. 그렇기에 마음을 확인한 이후 돌변해 버린 것은 아닐까. 참으로 안타까운 사랑을 하는 존재이다. 평생 좋아하는 누군가를 직접 어루만질 수 없는 운명, 애정을 받아도 마지막에는 결국 그 대상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 필연적으로 애정에 상처받고, 쓰라린 상황에서도 애정을 소모하여 또다시 애정을 갈구해야 하는 순환의 존재. 그렇기에 미움을 받는 것이 누구보다 익숙한 존재. 그 대상이 바로 거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애정을 갈구하는 동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거미'라고 답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들은 어떠한가? 애정을 받기 전 거미와 애정을 받은 후 거미의 사랑의 형태는 어떠하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우리는 거미를 악하다고, 비겁하다고 욕할 자격이 있을까? 거미의 사랑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군가는 최상위 포식자 같은 능동적인 사랑을, 누군가는 거미와 같은 수줍은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이들의 사랑의 형태, 방식을 존중한다. 물론, 극단적 형태를 제외하고 말이다. 다만, 만약 거미와 같은 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거나, 현재 거미와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면, 잘 들어보길 바라며 이 글을 거미와 같은 수줍고 애틋하며, 조금은 위험하게 수동적인 사랑을 하는 이들에게 전한다.
 "때로는 움직여보아라. 줄 가장 아래 끝에 매달려 손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밝게 인사를 건네보기도 해 보아라. 누군가 줄에 들어와 준다면, 급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천천히 조금씩 다가가보아라. 겁먹거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당신의 줄에 들어왔다는 것은 누구보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애정하는 것일 테니.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다고 깊게 속상해하거나 자신을 탓하지 말거라. 그들이 아직 당신의 수줍고 따뜻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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