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이묭이라는 일본 가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던가'라는 곡이 화제가 되었다. 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곡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 화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남성으로 표현했다는 것. 필자는 이러한 전달법을 통해 곡 속에 등장하는 여인을 본인에 내비친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사 중 등장하는 "완벽한 남자한테 안 끌려"라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 것이 아닐까. 물론, 가수 본인은 남자 가수를 동경했기에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깊게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에 깊은 사색을 하는 이유는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곡에 대한 감상을 적으며 떠오르는 또 하나의 곡이 있다. 정승환의 '너였다면'이라는 곡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곡을 들어본 이라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라면, 그냥 날 사랑할 텐데". 아이묭의 전달법과 정승환의 가사는 묘하게 매치가 잘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자인 '네'가 너를 사랑하는 '나'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었으면 하는 바람, 너를 사랑하는 내가 만약 너라면, 그냥 나 자체를 사랑할 텐데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 따듯하게 불었으면 하는 누군가 혹은 우리의 바람은 왜 더욱 차갑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사실, 아이묭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를 화두에 던진 이유는 '사랑은 전해 야만 하는 것'이라는 개인적 가치 때문이다. 누군가는 종종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정의한다. 그런 말들이 돌고 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많은 이가 이 짧은 한 문장에 동의하는가? 바로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그로 인해 사랑을 전할 수 없었기에, 따라서 내가 너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랑이란 살아가며 필수불가결 한 것이다. 누군가에 대한 호감은 나의 마음을 알게 해 주며, 누군가에게 받는 호감은 나를 더욱 성숙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오늘 몇 명의 사람을 사랑했는가? 몇 명의 사람에게 사랑받았는가? 오늘 당신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많은 질문을 던지며 슬슬 글을 마무리 지어보려 한다.
사랑을 통해 아픔을 겪어본 경험이 있다면, 내 글을 진지하게 맛보며 평가해 봤으면 한다. 왜 우리는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고 아파하는가. 행복, 따뜻함, 밝음 호의 등 긍정적인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사랑은 왜 우리에게만 유독 까다롭고 쉽게 허용되지 않는 것일까. 이 역시도 타이밍의 문제는 아닐까. 많은 생각에 잠겨본 경험이 있다면, 먼저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랑을 전하고 싶다던가', 난 누구에게 어떤 사랑을 전하고 싶은가? 내가 만약 내가 사랑하는 그 대상이라면, 나는 이유 없이 너를 사랑하는 나를 있는 힘껏 끌어안아주겠지. 그동안 고생했다며, 고맙다며, 나 역시도 너를 많이 원했다며 애처롭게 네 품에 안겨 슬피 우는 나를 어루만져 주겠지. '사랑을 전하고 싶다던가', 난 오늘 너에게 진지하게 내 사랑을 한 번 전해보련다. 너를 사랑하는 나에게 잔뜩 취해 나의 모든 감정을 한 마디에 털어 넘기련다.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 어떤 이유도, 조건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너를 쭉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