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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양 Jul 21. 2021

보험 고객 플라자, 다양한 사람들

"진단금 덕분에 치료 잘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중년의 아주머니가 연신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그저 보험금 청구 업무만 도와드렸을 뿐이라고

고객님이 준비를 잘하신 거라고 손사래 쳤던 기억이 난다.


다양한 업무 중에,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병원 서류를 접수하는 보험금 청구 업무.


종종 감사 인사를 받을 때면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상황만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정말 많았다. 


"사망보험금은 심사할 것도 없잖아요, 언제 나와요?"

"오빠, 이거 한 사람당 얼마지? 무조건 똑같이 나눠"


상중이었던 걸까

상복을 입은 4명의 남매가 창구에서 시끌시끌하다.


사망 수익자가 법정상속인이면

사망보험금이 나갈 때 모든 상속인 동의를 다 받아야 한다.


그래서 종종 상을 치르고 다 같이 방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들 침울하고 슬픈 분위기에서 청구를 하곤 했다.


그런데 왜 이들에게선 슬픔보다 기쁨이 더 느껴지는 걸까


4명의 동생들은 첫째 누나, 언니를 잃은 슬픔보다 보험금의 금액에 대한 기쁨이 커 보여서 

업무처리하는 내내 입 꾹 다물고 모니터만 응시했던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이 다녀가는 창구에서는 생각보다 황당한 일이 많이 발생한다. 


사고로 인해 왼쪽 다리에 후유장애가 남았다고 진단서를 가지고 왔는데,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왔던 고객이 있었고

 

분명 보험을 해약해서 찾아갔는데, 난 그런 적 없다고 소리를 질러서

그 당시 서류에 자필까지 보여주고 마무리된 적도 있다. 


하루는 그날따라 방문 고객 수가 많아 점심도 10분 만에 마시듯 먹고 나와서 일을 하는데,

화장실을 잠시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웬 여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어디 가세요?"

"아 네 고객님, 저 잠시 화장실을.."

"아니요. 가지 마세요. 저 바로 다음 번호거든요? 저까지 빨리 처리해주세요"


싫은데요. 하고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약자인 나는 그저 웃으며 자리에 앉아서 업무처리를 진행할 수밖에. 


고객플라자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일하며 

내 생각보다 이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은 한없이 좋은데, 

분노가 많고 상대를 향해 심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도 정말 많다는 것이다. 


고객의 앞에서, 친절하게 웃으며 업무를 도와주는 창구 직원들이 

로봇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한 말을 하며 괴롭힐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나의 업무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앉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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