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1987년, 아들을 향한 절대적 신뢰의 기록
"대학까지 보낸 아들이 빨갱이가 되었다는 순경의 위협 앞에, 글자 한 자 모르는 나의 어머니는 인생에서 가장 서슬 퍼런 '신뢰의 문장'을 써 내려가셨습니다."
뜨거웠던 1987년, 정의의 현장으로 향하다.
1987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해였고, 대학교 3학년이던 나에게도 생의 감각이 가장 날카롭게 서 있던 시기였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학생운동의 일환으로 조직된 '공명선거감시단'에 참여한 것은, 당시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이자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었습니다.
나는 정장 대신 투쟁의 결기가 서린 옷을 입고 고향 땅을 밟았습니다. 면사무소 투표소에서 뜬눈으로 참관을 마치고, 승리의 확신보다는 '민주주의'라는 거창한 단어의 무게를 짊어진 채 잠시 인사를 드리러 고향 집 문을 밀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내가 상상하지 못한 묵직한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서 순경의 방문과 '빨갱이'라는 낙인
내가 선거 감시 활동을 하느라 바빴던 사이, 고향 지서의 순경이 집으로 찾아왔었다고 했습니다. 국가의 권력을 등에 업은 그는 홀로 집을 지키던 어머니 앞에 앉아 위협과 회유를 섞어 내뱉었습니다. "아드님이 지금 빨갱이가 되어서 나쁜 짓을 하고 다닙니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나요. 어머니가 빨리 설득해서 그런 짓 못 하게 말리셔야 합니다".
학교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채 흙벽돌을 찍고 떡갈잎을 줍던 시골 노모에게 '빨갱이'라는 단어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저주이자 공포였을 것입니다. 공권력의 압박 앞에서 평범한 부모라면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며 매질을 해서라도 발을 묶었을 일입니다.
"본인이 옳다면 옳은 것입니다. “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달랐습니다. 어머니는 순경을 향해, 평생을 바쳐 길러온 자식에 대한 가장 당당한 '신뢰의 선언'을 던지셨습니다.
"나는 학교 문턱도 못 가본 무식한 사람이지만, 우리 아들은 대학까지 다니는 사람입니다. 대학 다니는 아들이 본인 스스로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인데, 내가 무엇을 안다고 못 하게 말리겠습니까. 나는 내 아들의 판단을 믿습니다".
그것은 배움의 유무를 떠나,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예우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지식을 믿은 것이 아니라, 아들이 가진 '양심의 결'을 믿으셨던 것입니다. 순경은 어머니의 그 서슬 퍼런 확신 앞에 아무런 대구도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믿음에 거슬리지 않는 삶을 위하여
집으로 돌아와 전해 들은 그 말 한마디는, 훗날 내가 35년 경영 현장에서 수많은 유혹과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나를 곧게 세워준 지지대였습니다. "나는 아들을 믿는다"는 그 짧은 문장은 나에게 세상 그 어떤 훈장보다 무거운 '도덕적 부채'가 되었습니다.
3선 CEO로, 그리고 경영학 박사로 살아오며 내가 지켜온 모든 공정성과 정의의 출발점은 바로 1987년 고향 집 안방에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지켜낸 아들의 자존감을, 나는 내 인생 전체를 걸어 배신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나의 성실함은 단순한 성공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믿음에 대한 가장 정직한 이자(利子)를 갚아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기록하는 자는 패배하지 않습니다. 그날 어머니가 지켜낸 나의 진실이 오늘날 나의 기록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