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딸의 잠을 지키기 위해 달린 6년, 그 정직한 동행의 기록
관리소장의 주말, 또 다른 '현장'으로의 출근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 영재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며 교육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당시 나는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입주민들의 일상과 시설을 책임지는 ‘공동주택관리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수백 세대의 민원을 해결하고 단지 시스템을 정비하느라 주중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주말이 되면 나는 또 다른 이름의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큰딸이 국가 영재교육 대상자로 선발되면서, 나는 딸아이의 재능을 꽃피우기 위한 전담 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주중에는 조직의 생존권을, 주말에는 자녀의 가능성을 경영하는 1인 2역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일반도로 1번 국도, 고속도로보다 깊었던 부녀의 시간
대전에서 공주교육대학교와 공주대학교 영재교육원을 오가는 길은 지금처럼 시원한 고속도로가 아니었습니다. 신호등마다 멈춰 서고 좁은 길을 지나야 하는 ‘일반도로 1번 국도’를 달리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고단했습니다. 주차장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머니들이었지만, 정장을 입거나 작업복 차림으로 핸들을 잡은 아버지는 나뿐이었습니다.
주택관리사로서 익힌 '철저한 관리와 책임감'은 자녀 교육에서도 그대로 발휘 되었습니다. 나는 단순히 차를 태워주는 운전수가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강의실에서 교수님들과 지적 사투를 벌이는 동안, 밖에서 아이의 다음 일정을 체크하고 컨디션을 살피는 '총괄 매니저'로서 6년의 장정을 이어갔습니다. 남들이 편한 지름길을 찾을 때, 나는 1번 국도의 묵직한 정직함을 믿기로 했습니다.
"자거라, 아빠가 너의 잠을 지키마. “
주중의 빽빽한 학업에 주말의 영재 수업까지 소화해야 했던 4학년 딸아이의 눈꺼풀은 늘 무거웠습니다. 백미러로 뒷좌석을 살피면 꾸벅꾸벅 조는 아이의 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 없었습니다. 나는 차 안의 엔진 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흔들림 없는 운전에 집중하며 나직하게 말하곤 했습니다.
"딸아, 이동하는 동안만이라도 눈을 좀 붙이거라. 차 안에서라도 자야 네가 수업 시간에 집중할 수 있지. “
나는 아이를 몰아세우는 독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이동식 휴식처'를 제공하는 조력자였습니다. 차 안의 정적 속에서 딸아이가 청했던 '쪽잠'은, 훗날 하버드 로스쿨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을 버티게 한 가장 달콤한 자양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의 헌신은 아이의 잠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계단의 법칙 : 서바이벌을 뚫고 얻은 추천서
영재교육원의 시스템은 냉혹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정밀한 평가를 통해 일정 수의 학생을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구조'였습니다. 나는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내가 강조하는 '계단의 법칙'임을 딸에게 몸소 가르쳤습니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딸아이는 단 한 번의 탈락 없이 중학교 3학년 과정까지 모든 단계를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이 끈질긴 성실함의 끝에는 위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6년간 우리 부녀의 주말 주행을 지켜본 공주대학교 교수님의 추천서는, 큰딸의 민족사관고등학교(KMLA) 입학 전형에서 그 어떤 자격증보다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성적표가 아니라, 매주 일반도로를 달렸던 아빠의 헌신과 차 안에서 잠을 청하며 버텼던 딸아이의 인내가 빚어낸 '공동의 승리 기록'이었습니다. 1번 국도 위에서 흘린 땀방울이 모여 하버드 로스쿨이라는 거대한 강물로 흐르기 시작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