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명문고 교복 뒤에 숨긴 '수업료 연체'의 낙인

부제 : 연체된 수업료, 그 서러운 독기가 빚어낸 리더십

by 아빠 매니저


멈춰버린 교실의 시간, 학생주임의 호출


천안북일고의 교복은 자부심이었지만, 때로는 나를 옥죄는 무거운 쇠사슬이기도 했습니다. 수업이 한창인 교실, 문이 열리고 학생주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면 내 심장은 발끝까지 떨어졌습니다. 내 이름이 불리는 이유는 단 하나, 연체된 수업료 때문이었습니다.


공부는 전교권을 다투었지만, 행정실 장부 위 내 이름 옆엔 늘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복도를 지나 학생주임실로 향하는 그 짧은 길이 세상에서 가장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의 꾸지람보다 더 아팠던 것은, 교실에 남겨진 친구들의 시선과 자존심 강한 열여섯 소년에게 수업료 독촉은 지울 수 없는 낙인이자, 실력으로도 넘을 수 없는 가난의 실체였습니다.


가장 시렸던 일요일, 기숙사 ‘면회’의 풍경


기숙사 생활은 치열한 공부의 현장이었지만, 주말이면 그리움의 전시장으로 변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기숙사 사감실에서 아이들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내 마음은 무거워졌습니다. 부모님이 정성껏 싸 온 고기반찬과 간식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면회실로 달려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은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그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빈 기숙사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거나 도서관 구석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지금도 25원짜리 떡갈잎을 줍고 계시겠지...... “


라는 생각에 목이 메어왔습니다. 내가 다른 친구들 부모님의 면회가 사무치게 부러웠던 것은 단지 맛있는 음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지탱해 줄 든든한 ‘빽’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던 어린 날의 외로움이었습니다.


외로움이 빚어낸 독기, 그리고 ‘돌보는 리더십’


그 서러운 주말들을 견디게 한 것은 결국 ‘독기’였습니다. 면회 올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내가 이 기숙사에서 살아남아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부모님이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웃을 때, 나는 책장을 넘기며 미래를 먹어 치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3선 CEO이자 기관장이 된 지금, 그때의 결핍은 직원들의 복지와 생존권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돌보는 리더십’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내가 받지 못했던 그 따뜻한 면회와 격려를, 이제는 내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무의식의 보상이자 ‘정의의 실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1번 국도를 달리고, 자식들의 하버드 로스쿨과 와 의대라는 성취를 일궈낸 모든 에너지의 뿌리는 결국 그 서러웠던 열여섯 소년의 눈물에 닿아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기록합니다. 기록하는 자는 패배하지 않으며, 나의 결핍은 이제 타인의 성장을 돕는 가장 단단한 거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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