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운명을 바꾼 첫 번째 승부수

부제 : 상장 뒤에 숨겨진 어머니의 공포와 ‘북일’이라는 기적 같은 당첨

by 아빠 매니저

금메달보다 무거웠던 어머니의 침묵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이른바 '상장 사냥꾼'이었습니다. 십자로 광장에서 웅변으로 군수님과 청중의 마음을 뒤흔들고 돌아온 날에도, 전교 1등이 찍힌 성적표를 당당히 내미는 날에도 내 가슴 한구석은 늘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서운함이 컸습니다. 남들은 상장 하나만 받아와도 온 동네가 잔치 분위기라는데, 나의 어머니는 내가 상장을 휩쓸어 올 때마다 환한 웃음 대신 짙은 안개가 서린 얼굴로 무덤덤하게 나를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경영학을 공부하며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침묵의 실체를 깨달았습니다.

25원짜리 떡갈잎 뭉치로 하루를 버티던 어머니에게 자식의 뛰어난 재능은 '기쁨'이기 전에 감당하기 벅찬 '공포'였습니다. "이 아이를 계속 공부시켜야 하는데, 내가 뒷받침하지 못해 그 우수성을 꺾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지독한 경제적 불안감이 어머니의 웃음을 앗아갔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침묵은 냉정이 아니라, 자식의 앞날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한 여인의 '비명 없는 통곡'이었습니다.

영광을 팔아 기회를 샀던 13살의 결단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내 인생 최초의 '전략적 결단'을 내렸습니다. 당시 내게는 전교 1등의 명예인 '교육감 상'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영광스러운 상장을 스스로 내려놓았습니다. 앞선 기록 (7화)에서 기록했듯, 이름만 거창한 상장 한 장보다 중학교 3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 줄 '양조장 장학금'이 내게는 훨씬 더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명예라는 사치를 위해 학업이라는 본질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내 손으로 금메달을 내려놓고 입학금과 등록금이라는 '실익'을 챙겼습니다. 열세 살 소년 ○○은 그때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때로 더 큰 목표를 위해 가장 화려해 보이는 껍데기를 기꺼이 버려야 하는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청양 소년의 유학, 그리고 북일이라는 '운명적 당첨’


중학교 졸업이 다가오자 더 큰 도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충남 청양에서 천안으로 고등학교 유학을 떠나는 것은 그 자체로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가정 형편을 생각해서 기술을 배워 빨리 취업하라"는 현실적인 충고가 쏟아졌지만, 나는 내 운명을 기술자의 길에 가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천안에는 세 개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각 학교의 색깔이 뚜렷했고, 어디로 배정되느냐에 따라 인생의 항로가 바뀔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운'이 찾아왔습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그리고 장차 나의 자부심이 될 천안북일고등학교에 당첨된 것입니다.


당시 3개 학교 중 가장 선망하던 곳에 배정된 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가난이라는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한 도전에 하늘이 응답해 준 '기적 같은 당첨'이었습니다. 북일의 교문을 처음 들어서던 날 느꼈던 그 전율을 잊지 못합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 위에서 비로소 '나만의 보폭'으로 걷기 시작한 나의 독립 기념일이었습니다. 북일의 긍지는 훗날 58세의 나이에 경영학 박사라는 고지에 오르게 만든 최초의 발사대가 되었습니다.


다시 길 위에 서서 내뱉는 진심


나는 지금도 인생의 파도가 높을 때마다 상장 대신 장학금을 선택하고, 운명적인 북일고의 당첨을 거머쥐었던 그 시절의 투지를 떠올립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독한 싸움 역시, 또 하나의 거대한 '선택의 순간'이자 '기다림의 시험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믿습니다. 내가 내디딘 정직한 발걸음과 최선을 다한 노력이 있다면, 운명은 다시 한번 나를 향해 미소 지어 줄 것임을 말입니다. 100점의 아집 대신 51점의 정직함으로 무장한 나의 기록이,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진실한 울림을 토해낼 것임을 믿습니다. 어머니가 남겨주신 "사람 구실 한다"는 그 당당한 자부심을 무기 삼아, 나는 남은 삶 또한 나답게 굴하지 않고 걸어갈 것입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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