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의 명예를 내려놓고 지킨 30년의 비밀
“13살 소년의 비밀을 지켜봐 주신 1,800분의 독자 여러분, 이제 2,000명이라는 대강당의 불빛이 보입니다.”
교무실의 정적, 13살 소년이 마주한 생존의 무게
1970년대 후반, 충남 청양의 겨울은 유독 길고도 시렸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그 무렵, 산꼭대기 흙벽돌집에서 내려다보던 마을 풍경은 설렘보다는 막막함에 가까웠습니다. 전교 1등이라는 성적표는 가난한 소년에게 유일하게 빛나는 훈장이었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늘 '다음 단계'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졸업식을 며칠 앞둔 오후,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조용히 교무실로 부르셨습니다. 평소 인자하시던 선생님의 얼굴에는 전에 본 적 없는 깊은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선생님의 책상 위에는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서류가 놓여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 ○ 아, 이번 졸업식에서 네가 6년 동안 평가 결과 전교 1등으로서 교육감 상을 받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당연한 결과란다. 그런데... “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의 찬바람을 바라보셨습니다.
"우리 지역 양조장 사장님께서 내놓으신 장학금이 있단다. 이 장학금이면 네 중학교 입학금과 교복값, 그리고 한 학기 등록금까지 해결할 수 있지. 하지만 학교 규정상 교육감상과 이 장학금을 동시에 줄 수는 없다고 하는구나.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네 생각은 어떠니? “
명예를 내려놓고 현실의 문을 열다.
어른들이 내민 그 현실적인 타협안 앞에서 13살 소년은 잠시 숨을 죽였습니다. 교육감상은 가문의 영광이자, 평생 자랑거리가 될 명예였습니다. 하지만 장학금은 내가 중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통행권이었습니다. 명예를 택하자니 어머니의 굽은 등 위로 쏟아질 입학금의 무게가 보였고, 돈을 택하자니 전교 1등으로서 지켜온 자존심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내 고민은 찰나에 끝났습니다. 나에게 명예는 배고픔보다 멀리 있었고, 상장은 당장의 생존보다 가벼웠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장학금을 받겠습니다. 중학교에 가서 공부를 계속할 수만 있다면, 상장 같은 건 없어도 저는 충분히 행복하고 당당합니다."
선생님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언 듯 보았습니다. 제자의 명예를 꺾어야 하는 스승의 아픔과, 그 무게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어린 제자에 대한 안쓰러움이 교차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전교 1등 제자의 자부심을 지켜주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셨습니다. 졸업식 당일, 나는 교육감상 대신 당시 지역의 큰 어른이었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수여하는 특별상을 함께 받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백방으로 뛰어 만들어주신, 소년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습니다.
어머니의 미소를 위해 간직한 30년의 비밀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어머니께는 끝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가난 때문에 자식의 이름이 가장 높은 곳에 불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미어질지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졸업식 날, 낡은 외투를 입고 오신 어머니는 내가 받아온 특별 상장과 두툼한 장학금 봉투를 보며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우리 막둥이가 장학금까지 타서 중학교에 가게 됐으니, 이제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
어머니의 그 말씀 한마디에 소년의 가슴속에 남아있던 작은 아쉬움조차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날 내가 지켜낸 것은 나의 자존심이 아니라 어머니의 평온이었습니다. 이 비밀은 내가 성인이 되어 CEO를 역임하고, 2년 6개월 만에 경영학 박사 학위를 손에 쥔 뒤에야 비로소 웃으며 털어놓을 수 있는 '인생 경영의 첫 번째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사람구실' 하라는 어머니의 숭고한 유언
나의 홀어머니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주는 거대한 대지였습니다. 가난과 편견이라는 날카로운 칼바람 속에서도 당신의 몸을 던져 나를 보호하셨습니다. 당신은 굶주릴지언정 자식의 배는 채워야 했고, 당신은 멸시받을지언정 자식만은 '사람 구실' 하며 살기를 평생의 기도로 삼으셨습니다.
작년 3월, 91세의 일기로 소천하시던 순간에도 어머니의 유언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내 손을 꼭 잡으신 채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남기신 그 한마디.
"○○아, 이제 굶지 않고 어디 가서든 사람구실 하며 사니, 나는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구나. “
그 투박하고도 간절한 말씀은 세상 그 어떤 화려한 수사나 훈장보다 고귀한 나의 '인생 최종 성적표'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나는 박사 학위를 가진 기관장이기 전에, 정직한 노동으로 제 몫의 밥값을 하며 타인에게 폐 끼치지 않는 '온전한 한 인간'이면 충분했던 것입니다.
다시 길 위에 서서, 나만의 보폭으로 걷는다.
지금 나는 다시 한번 인생의 모진 풍파 앞에 홀로 서 있습니다. 35년 직장생활의 끝자락에서 예기치 못한 시련들이 나를 흔들고, 때로는 가난했던 소년 시절의 외로움이 다시 고개를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내 안에는 13살의 그 소년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예보다 실리를 선택할 줄 알았던 영민함, 어머니의 마음을 지키려 침묵했던 속 깊은 배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개척했던 그 투지가 내 척추를 여전히 꼿꼿하게 세워주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남겨주신 "사람 구실 한다."는 그 당당한 자부심을 무기 삼아, 나는 남은 삶 또한 나답게 굴하지 않고 걸어갈 것입니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장중하게 본인의 속도를 유지하며 걷는 이 길 끝에, 비로소 어머니의 등불과 마주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 남길 가장 진솔한 고백이자, 오늘을 버텨내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나의 진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