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작은 탁자 위에서 세상을 호령하던 소년의 사자후
소외의 찬 바람이 불던 청양의 시제(時祭) 날
충남 청양의 겨울바람은 유독 날카로웠습니다. 그 바람은 옷깃을 파고드는 것을 넘어 어린 소년의 심장까지 시리게 하곤 했습니다. 매년 음력 10월이면 문중의 어른들이 모두 모여 조상님께 예를 올리는 시제(時祭)가 열렸습니다. 열 살 무렵의 나는 그 장엄한 행렬의 맨 끝자락에서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며 서 있었습니다.
그곳은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였지만,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섬이었습니다. 형님과 누님은 나와 나이 차이가 컸기에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고, 수십 명의 일가친척이 모인 그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어딘가 결이 다른 이방인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선택한 적 없는 혈연의 경계선이 어린 나의 발치를 보이지 않게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코앞에서 멈춘 떡 한 조각, 그리고 그어진 '선(線)’
제사가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옵니다. 제물로 올렸던 하얀 시루떡과 탐스러운 과일을 나누어 주는 시간입니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줄을 서 있던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나 역시 그 풍성한 나눔의 대열에 합류해 고소한 떡 냄새를 맡으며 내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을 때, 떡을 나누어 주던 어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물렀습니다. 그 찰나의 침묵은 청양의 칼바람보다 더 차가웠습니다.
“너는 우리와 성(姓)이 다르지 않으냐. 너는 이 줄에 설 자격이 없으니 그만 돌아가거라.”
코앞까지 다가왔던 하얀 떡 한 조각이 허공에서 멈췄습니다. 내 뒤에 서 있던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떡을 받아 들고 흩어졌지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남겨졌습니다. 성씨라는 이름의 거대한 벽이 어린 소년을 공동체 밖으로 밀쳐낸 순간이었습니다. 형님과 누님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보호받지 못한 채 그 거절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습니다.
"구걸하지 않겠다." 소년의 가슴에 새긴 맹세
집으로 돌아오는 산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빈손보다 더 아팠던 것은 ‘나는 왜 이 줄에 설 자격이 없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습니다. 억울함에 눈물을 쏟는 대신, 나는 가슴속에 서슬 퍼런 맹세 하나를 새겼습니다.
‘구걸해서 얻는 떡은 필요 없다. 세상이 나에게 먼저 상을 내밀게 하리라. 오직 내 실력으로 저 단단한 경계의 선을 부수리라.’
그날 내가 받지 못한 떡 한 조각은 역설적이게도 내 인생의 가장 강력한 허기(虛氣)가 되었습니다. 남이 주는 시혜를 기다리는 인생이 아니라,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겠다는 투지는 그렇게 소년의 척추를 세웠습니다.
십자로 광장의 작은 탁자, 거인이 시작된 곳
그날 이후, 나는 학교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를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성적우수상, 서예, 글짓기...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가슴 뛰게 한 것은 '웅변'이었습니다. 내 안의 응축된 에너지를 목소리에 실어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순간, 나는 비로소 자유로웠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청양군 십자로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웅변대회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전 군민이 모여든 그 거대한 광장에서, 열 살 소년이 마주한 교탁은 너무나 높았습니다. 내 키로는 단상 앞의 청중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은 급히 작은 나무 탁자 하나를 가져와 교탁 뒤에 놓아주셨습니다.
나는 그 작은 탁자 위에 올라섰습니다. 비로소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눈동자가 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탁자 위에서의 높이만큼 내 가슴은 벅차올랐고, 심장은 터질 듯 고동쳤습니다.
“이 연사, 강력히, 강력히! 외칩니다!”
작은 체구에서 터져 나온 사자후는 십자로 광장의 공기를 갈랐습니다. 단상 아래에 서면 보이지도 않던 작은 아이가, 탁자 하나에 의지해 세상을 호령하고 있었습니다. 연설이 끝날 때마다 박수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떡보다 달콤했던 1등의 함성, 그리고 58세의 박사학위
결과는 압도적인 1등이었습니다. 시제 날 떡 한 조각을 받지 못해 쫓겨나던 소년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단상 위에 올라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가 되어 있었습니다. 광장의 박수 소리는 그 어떤 제물보다 달콤한 나의 ‘첫 번째 밥값’이었습니다.
작은 탁자 위에 올라서야만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의 기억은, 훗날 58세의 나이에 30개월 만에 경영학 박사학위를 따내는 ‘거인의 집념’으로 이어졌습니다. 부족한 키를 채워주었던 것은 나무 탁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증명해 내겠다는 간절한 투지였음을 나는 그때 이미 알았던 것입니다.
인생의 파도가 높을 때마다 나는 그날의 작은 탁자를 떠올립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독한 싸움 역시, 또 하나의 거대한 시제 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나만의 '작은 탁자'를 놓을 것입니다. 100점의 아집 대신 51점의 정직함으로 무장한 나의 기록이,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가장 당당한 사자후를 토해낼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