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한흥물산의 재봉틀 소리와 영산정사의 풍경 소리가 빚어낸 리더십
가족, 서로의 삶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생존의 동지’
나의 자서전을 기록하며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금 정의해 봅니다. 내게 가족은 단순히 같은 핏줄을 나누었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삶을 지키고 응원하며 홀어머니와 함께 모진 풍파를 함께 건너는 가장 든든한 '생존의 동지'였습니다. 어린 소년 시절부터 나의 굽이진 인생길에는 나를 기어이 업고 뛰어준 두 개의 거대한 산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의 누님과 형님입니다.
한흥물산의 재봉틀 소리와 축구화에 담긴 누님의 청춘
나와 11살 차이가 나는 누님은 내게 또 다른 이름의‘어머니’였습니다. 가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시절, 누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홀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지금도 내 귀에 환청처럼 선명하게 들리는 주소와 이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도림동 1002번지‘한흥물산주식회사’. 누님은 그 삭막하고 먼지 날리는 공장의 재봉틀 소리 속에 당신의 가장 찬란했던 십 대 시절을 조각조각 묻었습니다.
누님은 자신의 청춘을 갈아 넣어 고향의 동생들을 지켰습니다. 명절이면 서울에서 내려올 누님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나는, 누님이 내민 보따리 속에 든 축구공과 축구화를 보며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공장 생활의 고단함을 견디며 한 푼 두 푼 모은 누님의 눈물과 사랑이 응축된 결정체였습니다. 누님은 정작 본인을 위해서는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못하면서도, 막내 동생의 발에 신겨줄 축구화만큼은 가장 좋은 것으로 챙겨주던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암 투병의 절망 속에서 나를 살려낸 누님의 지극한 간호
인생의 가장 가혹한 겨울은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마주한 대장암 3기라는 판정은 나를 무력하게 무너뜨렸습니다. 그 처절한 사투의 현장에서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낸 것은 바로 누님이었습니다.
누님은 당신의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나의 병실을 지키며 최고의 병간호를 해주셨습니다. 항암 부작용으로 음식 한 모금 넘기지 못할 때, 누님은 어머니의 손길보다 더 정성스럽게 나를 보살폈습니다. 내가 기적처럼 병마를 딛고 일어서 다시 400명 직원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누님이 당신의 생명력을 나누어 나에게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님의 그 지극한 간호가 없었다면 오늘의 ‘아빠 매니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산정사 대광보전, 형님의 불사가 일깨워준 생존 의지
누님이 병실에서 나를 간호할 때, 나의 형님 돈각 스님은 고향 충남 청양군 운곡면의 영산정사에서 기도로 나를 받쳐주셨습니다. 형님은 영산정사의 창건주로서 대광보전 공사라는 거대한 불사를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수술을 마친 지 불과 2개월도 되지 않아 아무나 할 수 없는 큰일을 묵묵히 밀고 나가는 형님의 뒷모습은 나에게 강렬한 생존 의지를 심어주었습니다.
항암 치료로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만, 나는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내가 비록 몸은 힘들어도, 형님이 일궈내는 이 위대한 순간들을 사진과 비디오로 남기자”라는 생각으로 대광보전의 착공부터 낙성식까지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형님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치열한 생존의 예식이었습니다.
가문의 정신적 지주가 된 형님의 기도와 누님의 격려
나의 삶에 있어 또 다른 큰 산은 자식 교육이었습니다. 특히 딸아이가 입시의 중압감으로 힘겨워할 때, 형님의 묵직한 기도와 누님의 격려는 우리 가족의 튼튼한 방패였습니다.
큰딸이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의 변호사가 되어가는 길목마다, 그리고 작은딸이 마침내 정신과 의사가 되어 환자들을 보살피게 되기까지 형님과 누님의 존재는 우리 가문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형님이 닦아놓으신 수행의 길과 내가 일궈온 경영의 길이 만나는 지점에는 언제나 ‘정의’와 ‘사랑’이라는 공통의 언어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하는 누님의 따뜻한 위로
세월이 흘러 91세의 어머니께서 소천하신 뒤, 그 빈자리를 채워준 것은 역시 누님이었습니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누님은 여전히 나에게 김치를 담가 보내주며 나의 생활을 어머니처럼 살피십니다. 한흥물산에서 동생의 축구화를 챙겨주던 그 어린 누나의 마음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최근 삶의 무게로 무기력함에 빠져있던 내게 누님은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 참 잘 살았구나 위로받게 될 것"이라는 누님의 말씀은 하늘에 계신 어머니의 음성과도 같았습니다. 누님은 막냇동생이 겪는 삶의 고단함을 당신의 일처럼 아파하며, 여전히 나의 가치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피보다 진한 우애, 그리고 못다 한 고백
나는 평생 형님과 누님 덕만 보았지, 정작 해드린 것이 없어 가슴 한구석이 늘 아립니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과 열심히 살고, 400명의 직원을 이끄는 리더로서 '밥값'을 제대로 하는 것이 그들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이라 믿으며 달려왔습니다.
이 자서전을 통해 평생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남깁니다.
“누님, 형님 돈각 스님. 당신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한흥물산의 먼지를 마시며 나를 키워준 누님의 눈물과 영산정사의 기도로 나를 세워준 형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뜨겁고 진한 피를 나눈 영원한 삼 남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