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빛바랜 계획표 속에 새겨진 지독한 사랑의 기록
먼지 쌓인 계획표 속에 새겨진 '지독한 사랑’
서재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2007년의 빛바랜 서류 뭉치. 그것은 내가 둘째 딸 수현이를 위해 매달, 때로는 매주 직접 작성했던 ‘공부 계획표’였습니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읽어 내려가는 나조차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지독했나” 싶을 정도로 계획표는 빈틈이 없었습니다. 새벽 6시 30분에 시작된 첫째의 공부부터, 밤 12시 30분을 넘겨 끝나는 셋째의 학습까지. 우리 집은 아침부터 밤까지 단 1분의 낭비도 허용하지 않는 ‘24시간 전략사령부’였습니다.
'매니저'의 전략 : 100점이 아닌 '1등'을 명령하다
나의 경영 철학은 교육에서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나는 딸에게 단순히 "열심히 해라"라고 말하는 무책임한 방관자가 아니었습니다. "○○ 계속 1등 유지", "△△ 전교 1등 탈환"이라는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경로를 설계했습니다.
토플(TOEFL) iBT 만점을 목표로 매일 4시간씩 영어를 배분하고, 민족사관고 수학 경시를 대비해 1~2년 선행 학습을 배치했습니다. 계획표 하단에 적힌 ‘아빠 명령’이라는 네 글자는 리더로서 내린 엄중한 지침인 동시에, "아빠가 네 뒤를 이토록 완벽하게 받치고 있으니 너는 뛰기만 하라"는 매니저로서의 약속이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세상이라는 냉혹한 전장에 나가기 전, 가장 단단한 ‘실력의 갑옷’을 입혀주고 싶었습니다.
시스템의 승리 : "기본이 없으면 성과도 없다. “
당시 내가 계획표 곳곳에 붉은 팬으로 강조했던 구절이 있습니다. “학교 수업과 내신에 철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25년 관리소장 생활을 하며 수백 세대의 안녕을 책임졌던 내가 배운 진리는 하나였습니다.‘기본’이라는 기초 공사가 무너지면 ‘성과’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작은딸은 그 가혹한 스케줄을 묵묵히, 그리고 단단하게 따라와 주었습니다. 사춘기 소녀로서 친구들과 놀고 싶고 쉬고 싶었을 텐데도, 아빠가 작성한 계획표를 인생의 지도 삼아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아빠는 ‘정보력’과 ‘시스템’으로 무장한 매니저가 되고, 딸은 그 전략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수행하는 ‘최고의 플레이어’가 된 완벽한 복식경기였습니다. 그 지독했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수현이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정신과 의사’라는 고귀한 결실을 맺었습니다.
의사가 된 작은딸에게 건네는 마지막 매니지먼트
이제 △△은 누군가의 아픔을 상담하고 치유하는 자리에 서 있다. 환자들은 세련되고 지적인 의사 △△만을 보겠지만, 나는 압니다. 그 흰 가운 아래에는 2007년의 그 무더운 여름밤, 아빠가 짜준 계획표를 붙잡고 졸음을 쫓으며 수학 정석을 풀던 열다섯 소녀의 인내심이 흐르고 있음을 말입니다.
“△△아, 고맙다. 아빠의 독한 명령을 사랑으로 읽어내어 정신과 의사가 되어준 네가 아빠는 너무나 자랑스럽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계획표를 짜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딸이 환자를 대할 때, 아빠가 가르친 ‘철저함’과 ‘공정함’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치유의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5원의 흙벽돌 정신은 그렇게 계획표를 타고 흘러, 한 명의 의사를 만드는 위대한 기적을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