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겸손>

by 현재

1

저는 지금 더 낮추고

낮추며 이 글을 씁니다만


잘나 보이고 싶어 고개 쳐들던 시절도

옳은 소리만 나불대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지금도 그 건방은 슬쩍 나오곤 하는데

아무래도 눈치를 받다 보니

전보다는 쇠약하고 연약합니다



2

결백한 얼굴을 하고서는

속으로는 오만

마치 실수도 안 하고 현명해

잘못한 적이 없는 얼굴은

활시위를 당기고 싶게

움직이는 얄미운 과녁모양


화해라는 단어의 뜻이

가슴에서 울려본지가

용서를 주고받아

얼음을 녹여본지가



3

연약한 이의 몸부림은

사실 좀 딱하다


손을 잡으며

누군가에게 온기를 받으면서도

둔탁하게 울리는 소리

그의 슬픔을 알 만하다


그러니 바삭해진 벽을

호호 불며 입김을 전해주면

정성스러운 이의 발에

조용히 엎드려 감사의 입을 맞추라



4

검은색 방울을 기울이면

그동안의 뼈대

우스꽝스러운 자화상은

빨랫줄에 널려 덜렁하다


울어라

생은 그래도 긴 그림자

고치고 뚝딱거리며

짚게를 풀어내 걸친


바닥에 엎드려 눈을 감고

오체로 투지 하여 게워내니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넷 다섯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동요 <반달>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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