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진심으로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아버지는 늘 말했다. 4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애편지를 썼다고. 그렇게 해서 엄마를 쟁취했다고 말이다. 엄마가 농촌지원 왔다 간 후 아빠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주소는 어떻게 알았을까?
아빠의 마을에 엄마네 돌격대에서 다시 농촌지원 인력이 도착했다. 엄마는 없었다.
"동무, 혹시 옥미 사관장 모르시오?"
"아는데요, 왜요?"
"주소 혹시 알 수 있겠소?"
"제가 왜요?"
"사실, 제가 그 동무를 좋아하는데, 선물도 받았는데 다시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말이오"
"아~ 그러세요? 알려드리지요. 그리고 응원할게요!"
- 옥미 동무에게 -
부대에는 잘 돌아갔는지요?
동무네가 가고 나서 같은 부대에서 다시 지원부대가 도착했는데 동무는 없군요.
시골 총각한테 시집 올 처녀가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편지를 하오.
여기는 그때 물어봤던 꽈리가 빨갛게 익었고, 머루도 까맣게 익었소. 빨간 꽈리는 어여쁜 것이 참 동무를 많이 닮았소.
마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겠소. 언제까지라도 상관없소.
동무 마음도 나와 같을 때 답장 주시오.
손훈 드림.
친구들끼리 술 마시고 놀기로 했다. 다들 신나 보인다. 도시에서 새로운 처녀들이 왔다고 다들 난리도 아니다.
"손훈! 인상 이제 그만 펴고 딴 여성 동무나 찾아보지?"
"뭐라고?"
화난 김에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날아갔다. 괜히 주먹다짐을 하고 눈이 번쩍하게 큰 주먹이 날아왔다.
...
눈을 떠 보니 어떤 여성이 내 머리맡에 앉아 있다. 옥미 동무였으면 좋으련만 아니다. 닮은 다른 여성이다.
"괜찮으세요?"
"일없소!"
기타 칠 힘도, 노래도 나오지 않는다. 인생이 이렇게까지 재미없는 적은 처음이다. 재미가 없다. 흥미가 없다. 홍원에 있는 큰 형이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놀러 오라고 편지가 왔다. 머리도 쉬울 겸 놀러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기차를 탄다고 엄마가 도시락을 여러 개 준비해 준다. 그렇게 보고 싶은 맏아들 만나러 간다니 엄마가 더 들떠 보인다.
"가서 형 귀찮게 하지 말고! 알았지?"
"알았어요, 알았다니까요"
형네 집은 아주 큰 기와집이고 독집이다. 그런데 가는 길에 더 크고 으리으리한 집이 보인다. 아마 이 동네 제일 부잣집인가 보다.
형네 집에 들어가니 고운 형수가 맛있는 밥상을 한가득 차려 놨다. 오랜만에 형과 술 한잔하고 밤새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내일 이 동네 제일 부잣집에서 초대했다며 가자고 한다. 궁금한 마음에 그러기로 했다.
여기는 공장들이 많아서인지 아침이 썩 상쾌하지 않다. 자연의 새소리도 없고 개울도 없다. 아무튼 오늘 가기로 한 부잣집이 궁금하다. 형과 함께 그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나를 모를 텐데 오자마자 가도 되는 건가?
오후쯤 형과 함께 그 집으로 갔다. 머리카락이 하야 지기 시작했고 키는 나 보다 커 보인다. 웃는 모습이 참 멋있다.
" 어서 오시게. 이 총각이 바로 자네 동생?"
"네 그렇습니다"
"어서 들어오시게. 마누라 술상 가져오게!"
엄청 큰 상에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린 진수성찬이 들어왔다. 얼굴 제대로 들지 못하는 어떤 처녀가 같이 들어왔다.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이네!"
"네"
"남자는 주량이 도량이라고 술 한번 마셔 봐야지?"
"네"
여기는 술을 술잔이 아닌 큰 밥그릇에 준다. 술 꽤 하는 편이지만 이 정도의 주량은 처음이다.
"자네 술 꽤 하누만. 우리 집 사위 감으로 합격!"
벌써 머리가 땡~ 하고 정신이 조금씩 없어진다.
눈을 떠 보니 벌써 아침이다. 어떤 처녀가 아침 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 집 딸인가 보다. 우리 형은 이 여자에게 나를 장가보내려고 여기로 불렀나 보다. 이 집 스케일로 봐서 장가 오면 걱정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 정이 없이 사는 것은 아마도 지옥이 되겠지. 부끄러워 눈 한번 제대로 들지 못하는 처녀에게 나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형네 집에 돌아오니 난리가 났다. 그 집이 어떤 집인데 그런 혼사 자리를 마다하냐고 난리이다. 기껏 아무 관심 없다가 왜 갑자기 맏형 노릇인지 잘 모르겠다. 술 한번 잘 먹었을 뿐이다.
이곳에서는 근심할 일이 없다. 일도 안 해도 되고 주는 밥만 먹으면 된다. 편하고 좋다.
그렇게 이년을 넘게 있다가 더 있으면 노동단련대에 갈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옥미 동무에게 편지를 쓰고 간다.
- 옥미 동무에게. -
옥미 동무, 잘 지내시오?
나는 의도치 않게 맞선을 보고 왔다오. 엄청난 부잣집이었으나 거절했소. 동무 때문에.
나는 아직도 동무를 잊을 수 없소. 쉽게 잊히지가 않소. 우린 운명인 게 틀림없소. 첫날 동무를 봤을 때부터 느꼈소.
동무가 떠나던 날 남기고 간 시계, 이걸 볼 때마다 동무가 옆에 있는 것 같소.
어제는 텔레비전에서 홍길동 영화를 방영하더구먼. 달빛아래 길동이를 기다리는 연화아가씨를 보니 내 마음이 덩달아 아프더구먼. 그리고 동무도 저 같은 달빛 아래 슬퍼할 것 만 같은 마음이 자꾸 드오.
옥미동무. 괜찮소? 한달음에 달려가 얼굴이라도 보고 오면 마음이 풀리련만.
여전히 나는 동무를 좋아하오.
마음이 바뀌면 답장을 주시오. 계속 기다리겠소.
손훈 드림.
집으로 돌아가니 두 번째로 왔던 팀이 돌아가고 새 팀이 왔다. 그런데 좋은 소식이 들린다. 옥미 동무가 좋아하던 동무와 잘 안 됐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찾아가기로. 지금이 바로 나에게 허락된 단 한 번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