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분이 혹시 기다리는 그 백마 탄 왕자인가요?"
기말고사가 끝나고 다들 집에 가느라 바쁘다. 짐들은 왜 저렇게 나들 많은지. 학교에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에 커다란 캐리어들을 저마다 하나씩 들고 오른다. 시끌벅적하다. 저 짐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나름 이제 대학생이라고 홀로 멀리에 와서 공부한다지만 정작 엄마 앞에서는 와르르 무너지는 어른 체면. 방학이 된다고 하니 마음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놨던 불쌍한 아이들이 발버둥 친 모양이다. 저 짐들은 분명 그 엄마 품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내 안에 그 아이는 저 아이들을 부러워 쳐다볼 뿐 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내 엄마는 이제 없어진 것만 같은, 아니 그렇다고 결정을 해버려서 한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아이.
그나마 어디론가 갈 수 있는 일정이 잡힌 건 조금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준홍이 오빠가 자기네 교회 청소년부 수련회 강사로 소개해 준 것이다. 가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교회를 어떻게 다니게 되었는지를 얘기하면 되는데 1시간 안에 어떤 흐름으로 가져가야 할까? 중고등학교 학생들일테니 조금 흥미롭게 재밌는 이야기들도 섞어서 얘기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북한에서도 사랑을 느꼈던 내 첫사랑 얘기도 살짝 들려줄까? 그러면 분명 좋아할 거야.
캐리어까지는 아니지만 작은 배낭에 옷가지 몇 개 챙겨서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준홍이 오빠네 교회 청소년부 수련회 장소로 가기 위해서이다. 다들 가는 엄마 품은 아니지만 나도 간다. 학교야 안녕.
고속버스를 타고 역에 도착하니 어떤 전도사님이 마중 나와 계신다. 젊고 외모가 깔끔하며 키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지만 신뢰가 가는 이미지이다. 환하게 웃으면서 차로 안내해 주셨고 운전해서 어떤 산골 속 청소년수련원으로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열댓살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순박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잠깐 주목했다가 금방 올망졸망 앉은 무리에서 끼리끼리 쉬지 않고 종알거린다. 전도사님이 소개 후 아이들 앞 무대에 마이크를 들고 나선다.
"친구들! 오늘 저 처음 보죠?"
"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고향이 우리 한반도 지도의 제일 북쪽 끝 함경북도 온성군이에요. 고향이 북한일 뿐 사실 저는 여러분처럼 평범한 학생으로 자랐어요. 탈북하기 전까지는요. 북한에서 여러분 또래의 친구들, 제가 여러분 나이 때에 어떻게 자랐을까요?
똑같이 공부하고 놀고, 때로는 부모님 농사일을 돕기도 했어요. 그리고 15살 될 쯤부터 사랑이 무엇인가에도 눈을 뜨기도 했죠."
이어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아이들 눈이 똘망 똘망하다.
"같은 반 어떤 남학생이 15살 되던 해 제가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직접 말을 들은 건 아니고 친구 통해서 들었어요. 그 이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몰래 도와주고 설명절이면 선물도 챙겨주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언젠가부터 찬바람이 쌩~하고 불더니 어떤 약속도 하지 않고 군대로 떠나가 버렸어요. 북한 군대는 10년 다녀오는 거 아세요? "
"우와~"
"여러분은 사랑하는 연인이 10년 동안 군대에 가있는다면 기다릴 수 있겠어요?"
서로마다 머리를 절레절레한다.
"하지만 저는 그 아이가 약속만 해준다면, 다들 하는 것처럼 작은 손목시계 채워주면서 기다려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그러겠다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약속을 남겨주지 않고 떠나가 버렸어요."
아이들의 눈빛이 나를 동정하는 눈빛이다. 저마다의 생각을 품고 나를 쳐다보는 눈빛. 귀엽다. 나는 저 아이들이 자지 않고 나의 말에 집중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다.
"이렇게 평범하게 살았던 제가 어머니의 인도로 두만강을 건너면서 평범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두만강 건너 한국으로 간다고 하면 제가 따라나서지 않을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강건너에 있는 이모가 돈을 주니까 그 돈을 받아서 대학교에 보내준다고요. 하지만 강을 건넌 후 다시 돌아가지 못했고 집에는 아빠가 홀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술만 마시고 가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던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졌고 그래서 매일 울면서 지냈습니다. 엄마에 대해서는 미운 마음만 날로 날로 커져갔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엄마를 보지 않을 수 있는 기숙사 학교에서 대학 준비를 했고, 대학교도 엄마를 볼 수 없는 멀리 떨어진 포항으로 왔습니다. 저의 신앙은 엄마를 떠나 대학교를 준비하던 한 기독대안학교에서 시작됐습니다. 울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에서 자라온 저의 생각은 그렇게 판단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십자가, 성경만 있어도 잡혀가는 세상이었고, 미친 사람들이라고 세뇌당했습니다. 하지만 아빠 보고 싶어서 매일 우는 저에게 어느 날 거짓말처럼 찾아오셨습니다. 영원히 제 옆에서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 아빠 보고 싶어 울면 꿈속에 아빠를 보내주셨습니다. 아빠가 사준 신발을 그리워하던 어떤 날에는 한 목사님이 신발을 사주시기도 했습니다. 해외 선교를 나갈 때는 익명의 돈을 받아 가기도 했습니다.
그 은혜로 지금은 중국에 체류 중인 수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인권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서 포항에 있는 한 예대 법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그리고 못 이룬 사랑도 사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저의 그분은 백마 타고 올 것 같은 느낌이 항상 든답니다. 여러분에게 저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큰 박수를 보내주며 초롱 초롱한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저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전도사님과 밖으로 나오니 저 멀리서 익숙한 사람이 다가온다. 준홍이 오빠다.
"저분이 혹시 기다리는 그 백마 탄 왕자인가요?"
아니라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꺾다란 키에 구릿빛 피부, 생김새는 참 순하다. 웃으면 더 그렇다. 조금은 쑥스러운 느낌이 몸짓에 숨어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왜 그 이후 스케줄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준홍이 오빠와 어떠한 약속을 한 적도 없다.
"이제 무슨 계획 없지?"
불쑥 묻는다.
"네"
"그럼 우리 교회 청년부에서 카약 타러 가는데 같이 갈래?"
"아 네~"
어떻게 이동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다. 같이 한참을 걸어가니 어떤 나이 지숙한 남자분이 차 옆에 서있다. 뭐지? 설마 저기로 가는 건가?
"우리 아빠야. 아빠차로 이동할 거야"
"안녕하세요~"
"그래요. 준홍이네 학교 후배라고?"
"네~"
너무 당황스럽다. 갑자기 준홍이 오빠의 아버님까지 만나다니. 한참을 말없이 어색하게 차로 이동한다. 제발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카약 타 본 적 있어?"
"아니요. 처음이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 무섭지는 않을 거야"
도착하니 오빠네 청년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오빠 뒤를 졸졸졸 따라다닌다. 카약 용 조끼를 입고 4인용 카약을 탔다. 한참을 가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한 명씩 바다에 풍덩풍덩 빠진다. 무슨 기교를 부리는 것이 중요한지 저마다 특이한 몸 짓을 하며 물에 빠진다. 나 보고도 하라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건 물론이고 물이 그렇게 친근하지는 않다. 이 낯선 곳에서 갑자기 저 넓은 바다에 뛰어들 자신이 없다. 준홍이 오빠보 학창 시절 친구들과 소년처럼 물에 뛰어들었다. 행복해 보인다.
절대 아니라고 했던 마음이 조금 달라지는 듯하다. 이후 나는 대학교오 돌아왔고 기숙사에서 드라마 다시 보기로 방학 내내 보낸다. 가끔 영어공부 하기도 했지만 사실 계속 놀기만 한다. 너무 심심하면 못 치는 기타 드르렁드르렁 거리며 찬양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깊은 감수성에 빠져 노래했는데 저녁에 방순이가 찬양이 참 은혜로웠다며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