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포근한 이불

온 우주가 반대해 나섰지만 나는 이 사랑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by 한은혜

사랑은 마음이 알기 전에 몸이 먼저 가있고, 몸이 가기 전 눈빛이 먼저 거기에 머문다. 본인이 이게 사랑이구나라고 느낄 때쯤 이미 온 세상이 안 뒤다. 아무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속의 마음을. 하나님과 나의 은밀한 거래, 대화를. 10년도 지난 지금 그때를 돌아보니 이미 그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내 마음속의 사랑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도. 다만 나의 기도는 그 사랑에 용기를 간구하는 기도였는지도 모른다.


저분이 하나님이 내게 보내주신 백마 탄 왕자님이라면 내 옆에 와서 앉게 해 주세요. 그 떨리는 기도가 바로 다음날 이뤄지고 나는 조금의 활기와 용기를 받았다. 그를 향한 모든 것들이 망설임 없이 추진되었다. 두 팀이 연합하는 게임에서도 발표에서도 조금의 거리낌이 없이 그를 향해 돌진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사랑에 대한 구애라고 생각하고 계획한 것은 아니다. 몸이 그렇게 반응할 뿐이었다.


모든 일정 마치 그 고요한 밤이 찾아왔다. 하늘과의 은밀한 대화만이 가득한 시간이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오늘도 그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 기도했다. 하나님. 정말 이 사람이 그 사람이라면 내일 헤어질 때 그가 찾아와 내 핸드폰 번호를 물어보게 해 주세요. 누가 나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시킨 적이 없다. 배운 적도 없다. 책을 읽은 적도 없다. 한없이 웅크러진 내 마음이, 지치고 쓰라린 내 가슴이 그렇게 시킨 것 같다.


이 사람이 내게 전화번호를 안 물어보면 어떻게 하지? 그런 염려나 걱정 같은 것은 없었다. 이젠 헤어질 시간이구나 라는 그 쓰라림이 점점 강해질 뿐이었다. 마지막 대 예배를 드리러 모였다. 미국에 있는 큰 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하셨다. 다 마치시고 나갈 때 누군가 그 뒤를 쫓아간다. 익숙한 모습이다. 그 사람이다. 뭐가 저리 간절할까? 주변 말로는 그가 신학교를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신앙의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대단한 열정이구나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포항으로 가기 위해 같은 교회 팀을 찾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자매님!"하고 부른다. 그 사람이다.


"네?"


"저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전화번호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0.1초도 안 돼서


"네!"


라고 대답하고 그가 가져온 수첩에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작은 손 편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상상이, 기도가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되다니. 이런 일이 어떻게 내게 이루어지다니. 꿈만 같다. 지금 같았으면 나도 그의 번호를 물어봤을 텐데 그때는 너무 부끄러워서 얼어버려서 이내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포항으로 가는 스타렉스 안에서 편지부터 꺼내 읽었다. 남자인데 또박또박 정자로 써 내려간 편지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내용은 존경스럽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나는 1분 1초를 세어 가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전화번호까지 가져가 놓고 연락 안 하는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연락이 오는 게 먼저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안 온다. 보통 포항까지 4시간도 넘어 걸리니 중간에 잠이 오는데 그때는 잠도 안 왔다.


한두 시간쯤 지나서 전화 한 통이 왔다. 나는 그 인 줄 알고 얼른 받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포항에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교회 한 전도사님을 자매님께 소개해주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키도 크고 잘 생기셨고 나이는 27살입니다. 자매님 몇 살이시죠?"


"25살입니다."


"아이고 딱이네요!"


"아~ 네. "


"마음 있으시면 다시 저한테 연락 주세요~"


"네!"


기다리는 전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개를 받았다. 올해는 분명 특별한 해인게 분명하다. 그 오랜 세월 마음속에서 기다려왔던 25살. 엄마가 결혼 한 나이. 나도 엄마처럼 25살에 결혼할 거야 라는 마음속 다짐이 눈앞에 이른 나이. 그럼 뭐 하는가 아직 남자도 없는데. 오늘 내 번호 가져간 사람은 연락도 없는데. 또 김칫국부터 마셨나 싶어 마음이 심란하다.


"띠링"


문자가 하나 왔다. 그 사람이다. 장문의 문자다. 아마도 이것은 나의 사랑이 연결됐다는 신호겠지? 손이 떨린다.


"자매님. 오늘 연락처 물어봤던 한민입니다. 연락처 적어주셨던 수첩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지금 찾아 연락드립니다. 잘 내려가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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