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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Jun 10. 2023

미국 장례식에 가다

삶의 마지막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셜리 님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셜리 님은 지인의 시어머니이신데, 내가 그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시다는 것뿐이었다. 요양원에는 환자들을 위한 병동이 있고, 단지 안에 배우자들을 위한 거주 시설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고 들었다. 셜리 님과 그녀의 남편은 그곳에서 오 년 가량 함께 지내오던 중이었다.


미국의 장례 문화는 TV로만 봤던 터라,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또 옷은 어떻게 입고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교회와 장례를 주관하는 곳에서 모든 준비를 하기 때문에, 그냥 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지인이 말씀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구글링을 해보니, 장례식 전후에 힘들었을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해서 가져다주는 것을 추천하길래, 차후에 식사대접을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복장을 하고 갈지 몰라서 남편과 수선을 떨었다. 최고로 좋은 옷을 입고 가서 예의를 갖추고 추도하면 되지 않겠냐고 남편이 말해서, 망설이다가 감색 드레스를 입었다. 남편과 오랜만에 잘 차려입고 길을 나선다는 생각에, 장례식에 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들떴다. 그러다가 금세 처량해졌다. 한국에서는 동네 엄마들이랑 차를 마시러 가더라도 가끔은 나풀거리는 옷을 입고 한껏 기분을 낼 수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후줄근한 차림이 일상이다. 어디 딱히 차려입고 갈 곳도 없다.


집 밖을 나섰는데, 쨍한 햇볕 아래에서 보니 나의 드레스는 감색이 아니라 환한 바다색이었다. 소맷단도 파도처럼 나플거리고, 목에는 큰 진주 한 알이 장식으로 박혀 있어서인지, 아무래도 추도식 복장으로는 너무 화려해 보였다. 옷을 다른 걸로 갈아입을까 했더니, 그러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다고 남편이 재촉하는 바람에 찜찜한 마음으로 차에 탔다.


추모식이 열리는 교회에 도착했다. 예배당 입구 쪽에서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 후 안으로 입장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앞쪽에서 지인과 지인의 남편이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지인 부부와 인사를 나누는데, 그만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래서 얼른 고개를 돌려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예배당으로 들어섰다.


예배당 안은 조문객들로 벌써 꽉 차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 순간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불현듯 마음속에 평화가 내려앉았다. 추도식에 뭘 입고 갈까, 내 옷이 너무 튀면 어쩌나, 이런 얄팍한 고민들이 너무 우스웠다. 마음속에 일던 삶에 대한 걱정과 욕망들마저 순식간에 부질없이 여겨졌다. 단정하고 소박하게 차려입고 흰머리 곱게 빗어 넘긴 신 어르신들이 조용히 추도식의 시작을 기다리고 계시는 모습은 고요하지만 압도적이었다. 그들이 살아온 인생을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욕심 없이 소박하고 평범하게 살아왔을 그들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의 시할머니도, 나의 시어머니도 그러한 삶을 살아오셨다. 흰머리 소복할 나이에 남편과 두 손 잡고 오붓하게 말년을 보내는 삶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거면 충분하다는, 그거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추도식이 진행되었다. 셜리 님의 영상과 함께 셜리 님이 소속된 교회 목사님, 친구, 여동생, 아들, 마지막으로 남편의 추도문을 들으며 셜리 님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스물여섯 해 동안 셜리 님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셨다. 주일에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봉사하셨다. 두 아들의 엄마이자 아내로서 가족들에게도 헌신적이었다. 오로지 사랑을 베풀며 이타적인 삶을 살던 셜리 님께서는 안타깝게도 쉰 중반에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으셨다. 십여 년간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상태가 악화되면서 남편과 함께 요양원에 입소한 게 오 년 전이었다. 셜리 님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추모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셜리 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병마가 닥쳤을 때 셜리 님은 그것조차 원망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셨다고 했다. 영상에서 셜리 님의 환한 미소를 보았다. 휠체어에 앉은 모습도 그저 해맑고 아름운 천사처럼 보였다.


셜리 님의 조건 없는 사랑,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 늘 감사하는 마음가짐이 나의 마음 깊이 전해졌다. 모르고 지나갔을 영혼이 나에게 닿았다. 세상을 떠나면서 누군가는 타인에게 영감을 주는 고귀한 존재로 남는다. 셜리 님처럼 평범한 삶을 살다 간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충분히 등불로 존재할 수 있다. 나의 이기적인 자아를 환히 비추어주니, 세상이 좀 달라 보였다.


남편 회의가 있어서 추도식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에게도 셜리 님의 추도식이 의미 있게 다가왔나 보다. 우리는 추도식 이후 조건 없는 사랑의 대명사로 셜리 님의 이름을 붙였다. '셜리 님처럼 나에게 잘해줘서 고마워' 혹은 '셜리 님처럼 행동해야지, 그러니까 설거지 좀 해줘'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갔다. 남편도 나처럼 함께 나이 들어갈 미래를 그려봤음이 분명하다. 미국에서의 삶이 한국에서의 삶보다 쪼들리지만, 셜리 님과 셜리 님의 남편처럼, 그리고 추도식에 함께한 많은 어르신 커플처럼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며 살겠노라고 다짐했음이 분명하다.


내가 가진 옷 중에서 가장 화려한 바다색 드레스를 입고 추도식에 참석해서 다행이다. 곱게 차려입고 앉아 있는 나를, 어르신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는 나를,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인 나를 셜리 님께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셨으리라. 부디 편안하소서, 셜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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