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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Mar 17. 2022

이민자의 노래, 나의 이야기는 들려져야 한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이민자들

남편과 내가 필라델피아로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남편의 미국인 지인들은 하나같이 축하해 주었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역사가 살아있는 도시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예술과 문화의 도시라는 그들의 소개를 듣자 이민 생활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 속에서도 살짝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었다.


2019년 9월 4일, 나는 필라델피아에 첫 발을 내디뎠다. 공항에 도착한 후 필라델피아 시내를 가로질러 남편이 마련해둔 집으로 향하던 날의 실망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십 여 분 가량 차를 타고 집으로 이동하는 동안, 금이 가고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길과 낡고 지저분한 건물들, 미국 영화에서나 봄 직한 빼곡히 늘어선 빈민가들이 내 눈앞에서 빠르게 스쳐지갔다. 이제껏 내가 다니면서 보아왔던 미국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들과는 전혀 다른, 미국의 또 다른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하면서 충격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유쾌하고 생동감 넘칠 것이라고 기대했던 도시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건 그저 닳고 해진 거리뿐이었다. 하늘마저 흐려서 세상이 온통 잿빛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필라델피아에서 서북쪽으로 사십 여분 가량 떨어져 있는 동네이다. 동네 주민들 대부분이 백인들이다. 도서관이나 대형마트를 가면 다른 인종들도 보이지만, 동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동네 분위기는 다행히 개방적이다. 선거 기간에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깃발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인종 차별을 반대하며, 코비드 지침이 떨어지자마자 백신을 접종하고, 마스크도 잘 착용하는 동네이다. 이 동네에서 희귀해 보이는 동양인인 내가 걷고 있으면, 길 건너편에서도 손을 흔들며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온다. 가까이 지내는 동네 지인들은 한국 마트인 H마트에서 간혹 쇼핑을 하며 김치를 좋아한다. 


필라델피아에서 사십 여 분 떨어진 이 안전한 동네에서 나는 지금까지 안전하게 잘 살고 있다. 필라델피아에서 흑인 인종차별 시위로 난리가 났을 때에도, 티브이에서 흉흉한 총기 관련 범죄 뉴스가 흘러나올 때에도 딴 세상 얘기인양 이 동네는 평화롭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동양인 혐오가 증가한 상황이지만, 아직 위협과 경멸의 눈길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이 동네 사람들은 늘 상냥하게 웃는다. 집집마다 정성스레 집을 가꾼다. 그래서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꽃들이 집집마다 가득하고, 핼러윈과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아기자기한 조명들이 환하게 밤길을 밝힌다. 울창한 고목들은 배경처럼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새파란 하늘과 핑크빛 석양마저 그림처럼 완벽하다. 이 아담하고 예쁜 동네에서 나는 한가하게 걷고 또 걷는다. 유유자적 하루하루 걷고 있는 동안, 이 년 반이라는 시간이 사라졌다.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집고양처럼 얌전하게 갇혀 있는 동안 기회가 하나둘씩 내 손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코로나 때문이었다고 이유를 대 보지만 , 정말로 그게 이유였을까?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 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이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서 뭐라도 하고 있고 있었을까? 나는 기회를 찾고 쟁취했을까?


나에게 이런 자각을 준 건 바로, 이민자 지원을 목표로 한 비영리 단체인 '필라델피아 웰컴잉 센터'의 세미나 모임이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과 모임을 가졌었는데, 어제가 오 주차 세미나의 마지막 모임이었다. 사실 첫 모임부터 마음이 무척 혼란스러웠다. 이민자들의 영어실력은 천차만별이고 발음 또한 다양해서, 영어로 소통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버거웠다. 알아듣기 위해 집중력을 쏟다 보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비되어서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감정적으로 더 힘들고 혼란스러웠다.


모임에 참석한 이민자들은 대부분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다. 미국에서 산 기간은 대략 삼십 년부터 육 개월까지 다양했지만, 미국인들과 친분을 가지고 교류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미국의 개인주의적 문화에 어울리기란 쉽지 않고, 고립되고 위축되어 고향이 그립고, 사람이 그립다. 그렇지만, 미국 땅에 오면서 결심했던 포부는 포기하지 않는다. 같은 이민자들끼리 교류하면서 격려와 용기를 나눈다.


결혼이민자인 나는 어떻게 보면 이들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마음만 먹으면 동네 미국인들과 좀 더 친밀하게 교류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남편을 괴롭혀서라도 영어 공부를 더 빡세게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비자 문제없이 취업도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조건 속에 위치해 있는데, 나는 자신감이 없다고 징징대고 외로움 속에 나를 묻어 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민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


세미나의 마지막 강의에서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스토리텔러인 Chimamanda Ngozi Adichie의 TED 영상 'The danger of a single story'를 소재로, 저널리스트 Emily Neil이 모임을 이끌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편적인 편견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Emily의 메시지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아프리카에서 온 한 이민자는 원숭이라고 불린 적이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하면 미개인 취급을 받고, 그래서 영어로 얘기하면 사람들이 무척 놀란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질병과 재난, 내전이라는 단편적인 스토리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콜롬비아에서 온 이민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듯이 마약에 관련된 질문을 한다고 했다. 이러한 얘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내 머릿속에도 가득하다. 최대한 편견을 없애보겠다고 노력하지만, 한 나라와 연관되어 퍼뜩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렇게나 단편적이다.


단편적인 편견에 가려진 수많은 개인들의 아름답고 진실된 이야기들은 결국 내가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묻혀버리고 말 것이며, 결국 지금처럼 무지한 편견만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라는 말에 무척 공감이 갔다. 나의 이야기는 반드시 세상에 전해져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글을 쓰며 기록을 남기는 것, 비록 하찮은 삶이라도 나의 흔적을,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가난하고 위험해 보이는 필라델피아 빈민가에서도, 아름답고 유쾌한 개인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펼쳐지고 있을 것이며, 평온해 보이기만 하는 내가 사는 이 동네에도 누군가는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를 쓰고 있을 것이다. 별나라에 떨어진 것 같은 이민자들은 외롭고 두려운 이야기들을 한껏 쏟아내고 나면, 또 어는 날은 도전과 성취감으로 이야기를 가득 채울 것이다.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나? 앞으로는 무슨 이야기를 쓰게 될까? 깊이가 얕고, 목표도 뚜렷하지 않고, 감정은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다. 평생 이런 이야기만 쓰고 있을까봐 두렵지만, 결코 놓지 않을 동아줄 같은 한 문장 '나의 이야기는 반드시 들려져야 한다.', 이 문장을 끝까지 잡고 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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