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에 담긴 간절한 마음
'사랑'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파키라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케일라는 조그마한 아기였다. 조그마한 아기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다가 보니, 베란다 구석에 내팽겨쳐져 있던 파키라는 어느새 시들시들해졌다. 그 당시 파키라도 케일라처럼 작고 여려서 따뜻한 눈길과 손길이 필요했었는데, 육아로 지친 나에게 파키라의 존재는 무의미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누렇게 변색된 잎을 하나 둘 떨어 뜰이면서도, 파키라의 생명력은 끈덕졌다. 기어이 남은 잎 하나를 달고서는 버티었다. 초라한 몰골로 죽지 않고 버티는 모습이 밉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카라의 밑동을 잘라버렸다. 말라비틀어진 몸통에서 새순이 돋아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죄책감이 살짝 들었지만, 후련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을까, 파키라가 부활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파키라 잎이 고개를 쏙 내밀고 있었다. 연두색 고운 잎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파키라의 생명력에 감탄했다. 그렇게 꼴 보기 싫어하던 파키라였는데, 예뻐졌다고 금세 사랑에 빠져버리는 나의 이중적인 모습에 놀라면서 파키라에게 다시 한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파키라가 연한 잎을 하나둘씩 만들어 내는 동안 케일라도 무럭무럭 자랐다.
파키라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건 케일라였다. 사랑이가 케일라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베란다에서 놀 때면 '사랑아'라고 부르며 말을 종종 걸곤 했다. 다시 부활한 사랑이는 케일라에게 놀이 친구가 되어주었고, 나에게는 위로가 되어주었다. 힘이 들 때, 사랑이의 생명력을 떠올리면 힘든 게 좀 덜 힘들게 여겨졌다. 그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사랑이를 보고 있으면 강인한 생명력이 내 몸으로 흡수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랑이는 십여 년을 우리와 함께 했다.
십여 년 동안, 비슷한 속도로 자란 케일라와 사랑이는 키가 비슷했다. 2019년 여름으로 미국으로 올 때, 우리는 사랑이와 헤어졌다. 다행히 환한 웃음을 가지신 분이 오셔서 사랑이를 데리고 갔다. 지금쯤 사랑이는 얼마나 컸을지 참 궁금하다.
미국으로 이사를 온 첫 해에 내 생일 선물로 남편이 또 다른 파키라를 데리고 왔다. '머니 트리'라며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정말 속물인 건지, 남편이 선물해준 머니트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고 마른 몸뚱이에 잎이 달랑 두 개 달려 있었다. 과연 이 머니트리가 사랑이만큼 자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남편과 내가 미국 생활 적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머니트리는 혼자 꾸역꾸역 볼품없는 모양새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잘 자라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 머니트리가 눈에 거슬려, 올해 초에 다시 줄기 부분의 절단을 감행했다. 예전에 사랑이가 그랬던 것처럼, 이 머니트리도 꼭 되살아나기를 희망하며 기다렸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나는 다시 한번 강한 생명력의 기적을 목격하게 되었다. 연둣빛 새순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앙증맞은 잎이 달리고, 한 달 사이에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조금씩 풍성해지고 있는 머니트리의 모습에 매일 신기해하며 나는 지금 이름 봄을 즐기고 있다.
남편이 데리고 온 머니트리가 이제 제 이의 사랑이가 될 것 같다. 미국 생활이 힘들 때, 나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존재로 있어주길! 따스한 봄볕 먹으며, 나의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무럭무럭 커다오, 사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