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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Feb 26. 2022

'사랑'이라고 불린 파키라

화초에 담긴 간절한 마음


'사랑'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파키라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케일라는 조그마한 아기였다. 조그마한 아기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다가 보니, 베란다 구석에 내팽겨쳐져 있던 파키라는 어느새 시들시들해졌다. 그 당시 파키라도 케일라처럼 작고 여려서 따뜻한 눈길과 손길이 필요했었는데, 육아로 지친 나에게 파키라의 존재는 무의미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누렇게 변색된 잎을 하나 둘 떨어 뜰이면서도, 파키라의 생명력은 끈덕졌다. 기어이 남은 잎 하나를 달고서는 버티었다. 초라한 몰골로 죽지 않고 버티는 모습이 밉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카라의 밑동을 잘라버렸다. 말라비틀어진 몸통에서 새순이 돋아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죄책감이 살짝 들었지만, 후련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을까, 파키라가 부활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파키라 잎이 고개를 쏙 내밀고 있었다. 연두색 고운 잎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파키라의 생명력에 감탄했다. 그렇게 꼴 보기 싫어하던 파키라였는데, 예뻐졌다고 금세 사랑에 빠져버리는 나의 이중적인 모습에 놀라면서 파키라에게 다시 한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파키라가 연한 잎을 하나둘씩 만들어 내는 동안 케일라도 무럭무럭 자랐다.


파키라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건 케일라였다. 사랑이가 케일라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베란다에서 놀 때면 '사랑아'라고 부르며 말을 종종 걸곤 했다. 다시 부활한 사랑이는 케일라에게 놀이 친구가 되어주었고, 나에게는 위로가 되어주었다. 힘이 들 때, 사랑이의 생명력을 떠올리면 힘든 게 좀 덜 힘들게 여겨졌다. 그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사랑이를 보고 있으면 강인한 생명력이 내 몸으로 흡수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랑이는 십여 년을 우리와 함께 했다.


십여 년 동안, 비슷한 속도로 자란 케일라와 사랑이는 키가 비슷했다. 2019년 여름으로 미국으로 올 때, 우리는 사랑이와 헤어졌다. 다행히 환한 웃음을 가지신 분이 오셔서 사랑이를 데리고 갔다. 지금쯤 사랑이는 얼마나 컸을지 참 궁금하다. 


미국으로 이사를 온 첫 해에 내 생일 선물로 남편이 또 다른 파키라를 데리고 왔다. '머니 트리'라며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정말 속물인 건지, 남편이 선물해준 머니트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고 마른 몸뚱이에 잎이 달랑 두 개 달려 있었다. 과연 이 머니트리가 사랑이만큼 자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남편과 내가 미국 생활 적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머니트리는 혼자 꾸역꾸역 볼품없는 모양새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잘 자라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 머니트리가 눈에 거슬려, 올해 초에 다시 줄기 부분의 절단을 감행했다. 예전에 사랑이가 그랬던 것처럼, 이 머니트리도 꼭 되살아나기를 희망하며 기다렸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나는 다시 한번 강한 생명력의 기적을 목격하게 되었다. 연둣빛 새순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앙증맞은 잎이 달리고, 한 달 사이에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조금씩 풍성해지고 있는 머니트리의 모습에 매일 신기해하며 나는 지금 이름 봄을 즐기고 있다.



남편이 데리고 온 머니트리가 이제 제 이의 사랑이가 될 것 같다. 미국 생활이 힘들 때, 나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존재로 있어주길! 따스한 봄볕 먹으며, 나의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무럭무럭 커다오,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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