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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Jun 11. 2023

미국 동네 축제 카니발에 가다

심심한 미국 일상에서 카니발이란

캐나다 산불의 여파로 며칠 동안 하늘이 누랬다. 플라스틱이 탈 때 발생하는 탄내가 공기 중에 떠돌아 다녔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듯한 태양마저 하늘에 떠 있으니, 이곳이 현실인지 영화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기후 변화때문에 곧 닥칠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금요일에 있을 카니발에 친구들과 놀러가기로 계획한 우리 딸, 어쩌나, 고민스러웠다. 한국에서 가져 온 마스크를 창고에서 꺼내 놓고, 연기가 옅어지기를 조바심내며 기다렸다. 다행히, 금요일에는 하늘이 좀 맑아지고, 푸른 빛이 돌았다. 딸을 카니발에 데려다주는 김에 미국 문화를 나도 한번 즐겨보기로 했다.


해마다 유월이면 동네에서 카니발이 열렸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몇 년 만에 다시 열리는 축제라고 동네분이 설명해 주셨다. 미국에 산 지 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코로나 여파로 세상이 통째로 문을 닫았기 때문에 여전히 나에게는 뭔가 새로운 게 많다. 잃어버린 삼 년이 누구에게나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을 텐데, 나는 타국에서 고립되어 완전히 바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학창 시절 카니발에 친구들과 놀러 갔던 추억을 떠올리며, 나는 영화나 책에서만 경험했던 카니발의 낭만을 떠올리며, 딸은 친구들과 첫 단체 나들이에 신나하며 그렇게 카니발 장소로 출발했다.


들뜬 마음도 잠시, 카니발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차로 이십 여분 거리인데, 진입로가 편도 1차선 거리인지라 차가 많이 막혔다. 남편이 요령을 부려보겠다고 차를 돌려서 다른 길로 갔는데, 역시나 그쪽도 차가 막혔다. 사십 여분이 지나 카니발 장소에 도착했다. 각종 간이 놀이기구들이 번쩍번쩍 빛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고, 온 사방에 틴에이저들이 가득했다. 간혹 유모차를 끌거나 어린 아이들과 함께 인 가족들이 보이기도 했으나, 카니발은 주로 틴에이저들이 놀러가는 축제임이 분명했다.


딸이 친구를 찾아 떠나고 나자, 남편과 나는 맥주를 한 캔씩 사서 마시며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카니발 장소가 생각보다 작아서 딱히 갈 곳도 볼 것도 별로 없었다. 따닥 따닥 붙어있는 음식 노점과 놀이기구들, 그리고 놀이기구 앞에 긴 줄을 서 있는 틴에이저 사이들을 헤집고 다니며 한 바퀴 돌고 나니 할 게 별로 없었다. 다행히 한쪽에서 공연을 하고 있길래, 그곳 간이 의자에 앉아서 딸을 기다리기로 했다. 라이브 컨츄리 음악이 꽤 들을만 했고, 맥주도 맛있었다. 하모니카를 부는 연주자의 길고 하얀 수염이 바람에 방향을 바꾸며 춤을 추고 있었다. 친구들과 무리지어 신나게 놀고 있을 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가 기대했던 근사한 카니발은 아니었지만, 이만하면 한번쯤은 경험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점점 강해졌다. 알딸딸하고 몽환적인 기분에서 깨어났다. 어쩔 수 없이 차로 돌아가서 딸을 기다리기로 했다. 불꽃놀이까지는 사십 여분을 더 기다려야 했는데, 차에 타자 마자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순식간에 세상이 먹색으로 변했다. 놀이 기구의 불빛만이 희미하게 번쩍였다.  카니발에 괴물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틴에이저들이 뛰어다녔다. 딸에게 연락을 했다. 곧 딸은 세 명의 친구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비에 흠뻑 젖은 틴에이저 네 명이 차 뒷자석에 올라탔다.


집으로 가는 동안 틴에이저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최고로 재밌었던 날이라며 흥분해서 말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뮤지컬 헤밀턴의 노래들을 열창했다. 재잘거림과 웃음과 노래로 가득한 차에 함께 타고 싶은 듯 빗줄기가 계속 차창을 두들겼다.


틴에이저들에게는 불평거리가 없다. 그저 신날 뿐이다. 너무 작은 규모야, 볼 것도 별로 없어, 사람들이 많아서 짜증나, 이런 궁시렁거림이 그들에게는 없다. 주어진 환경따위야 아무려면 어때이다. 순간을 즐기면 그만이다. 언제부터 나는 불평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까. 사람 북적부적거리는 곳이 싫다고 불평, 음식이 맛 없다고 불평, 돈이 아까울 정도라고 불평, 생각보다 별로라고 불평. 언제부터 그렇게 고급진 삶을 살았다고. 딱히 고급진 삶을 산 것도 아니면서 불평에 불평을 달고 살고 있는 것 같다. 틴에이저들의 환희에 함께 하는 동안 가성비 따지는 인간인 내가, 나의 편의만 따지는 내가 참 못나 보였다. 그리고, 깔깔 웃을 줄 알던, 불평 따위 모르고 즐기던 내가 떠올랐다. 


딸의 친구들을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주고 카니발 여정이 끝났다. 카니발은 영화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로 주로 설정이 되어있다. 로맨틱한 연결이 일어나기도 하고, 청소년의 일탈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범죄가 일어나는 장소이자, 호러무비의 단골 설정이기도 하다. 몽환적인 이곳에서 상상은 날개를 단다. 나의 첫 카니발은, 로맨스이자, 과거로의 여행이자, 현재의 나에 대한 성찰이었다. 폭우까지 뿌려주다니, 꽤 낭만적이잖아? 나만의 카니발 영화를 찍고 온 날, 이렇게 미국 문화 체험 또 하나 체크 표시 완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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