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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Jun 20. 2023

아버지의 날과 짬뽕

미국 father's day 

아버지의 날, 미국인 남편이 먹고 싶어 한 음식은, 짬뽕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으로 한국식 중국집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날,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정오 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큰 식당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들과 장성한 아들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도란도란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동네잔치라도 열린 것 마냥 기분이 들떴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나 같은 잔치에 초대되어 함께 즐거워하는 동안, 사람들은 하나로 연결된다. 아버지라는 책임감으로 연대한 아버지들이 가족에게 둘러싸여 맛난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잔치의 주인공이 되어 잠시 세상 소란을 잊는 듯했다.


고국의 정서가 그리워서 특별한 날에 한국 식당을 찾았을 한국인 아버지들 사이에 생뚱맞게 끼여 있는 남편이 좀 우스꽝스러웠다. 아버지의 날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기대에 차서 짬뽕을 기다리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그의 파란 두 눈이 아이처럼 천진난만했다. 남편은 도대체 왜 하고많은 음식 중에 짬뽕이 먹고 싶었던 것일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사실 나는 이 식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이 중국집을 발견했을 때에는 한국의 여느 중국집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맛에 무척 기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음식이 별로였다. 큰 식당이다 보니 음식을 미리 대량으로 만들어 놓는 것 같았다. 갓 만들어낸 음식이 주는 따끈따끈 맛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짬뽕은 걸쭉했고, 탕수육은 질겼다. 그래도 남편은 맛있다고 젓가락을 바쁘게 놀렸다. 음식에 대한 불평을 토해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깨지락 깨지락 나도 동참했다. 국물까지 말끔하게 다 비운 남편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남편에게 도대체 왜 짬뽕이 먹고 싶었는지 물었다. 사실 자신이 간절하게 먹고 싶었던 음식은 해장국이었다고 했다. 해장국 식당이 없으니, 그나마 비슷한 느낌으로 짬뽕을 골랐다고 했다. 십오 년가량 한국에 산 남편은 입맛만은 한국인이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다음 날에는 단골 해장국집에서 속을 풀곤 했었다. 추어탕에, 돼지국밥에, 못 먹는 게 없었던 남편을, 단골 식당 아주머니들께서 기특해하시면서 좋아하셔서 늘 서비스도 넉넉했다. 한국을 떠난 후 나처럼 향수병에 시달리지는 않지만, 남편도 음식에 대한 그리움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남편이 집 근처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둘이 자주 단골식당을 돌며 점심을 먹으러 다녔던 시절에 비하면, 미국에서는 외식이 드물다. 밥값의 이십 퍼센트나 내야 하는 팁 때문에 외식비가 비싸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먹고 싶은 음식이 별로 없다. 그나마 있는 한국식당들도 맛이 별로다. 둘이 가끔 외식을 나가봐도 음식이 맛이 없으니 재미가 없어서 관두게 되었다. 시큰둥한 나에 비하면, 그래도 남편은 맛없는 짬뽕도 감사히 맛나게 먹을 줄 안다. 


아버지의 날, 고작 짬뽕 한 그릇에 신이 난 남편이 신기하기도 하고, 좀 안됐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짬뽕 한 그릇으로 해결해서 쾌재를 부리기도 했다. 내년 아버지의 날에는 짬뽕 말고, 맛난 것을 직접 만들어줘야겠다, 한국음식으로! 한 해도 우리를 먹여 살리느라 고생했어, 남편!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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