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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Jun 12. 2023

사춘기 딸의 이성친구를 만나다

미국 틴에이저와 한국인 엄마

미국 중학교 8학년,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딸이 오늘 이성친구를 만나러 갔다. 지난주에 그 친구가 딸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는데, 그 후 딸의 문자 메시지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고 있다. 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심지어 나와 남편에게도 상냥해졌다.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울 딸을 보며, 같이 덩달아 좋다가도 걱정이 되었다. 밴드에서 기타 연주를 하는 남학생, 분명 멋지지만, 남자친구로서 위험한 요소도 갖추고 있을 것 같았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을 것이고 혹시라도 바람둥이 날라리이면 어쩌나 우려하는 마음을 가지는 내가 참 한심했지만, 그래도 의심을 누르지는 못했다.


우등반 수업을 몇 과목 같이 듣는다, 기타, 드럼, 키보드 등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알고,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 글을 쓰며, 자신의 앨범을 녹음할 계획이다, 엄마가 일하시는 사립 고등학교에 다닐 예정이다,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살고 있다 등등이 이 친구에 대해서 딸이 알려준 정보이다.


사실 먼발치에서 이 친구를 본 적이 있었다. 딸이 이틀 동안 고등학교에서 밴드 공연을 했었는데, 이 친구는 딸과는 다른 밴드에서 공연을 했었다. 고등학교 팀들이 공연을 하는 동안, 학생들은 무대 아래에 서서 관람을 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 주변에 서 있는 딸을 보며 직감이 왔다. 딸이 아마도 이 친구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엄마의 관심을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으니 딸에게 나의 직감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었다.


딸이 호감을 가지고 있던 이성친구와 친해지게 된 게 딸만큼 나도 좋았다. 그래도 문자 메시지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면 불안하기도 했다. 새로운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딸이 얼마나 즐겁겠냐며 남편이 참견하지 말고 놔두라고 했다. 그래서 무관심한 척, 쿨한 척 행동하며, 친구에 대한 정보를 살짝살짝 캐냈다.


그리고, 바로 오늘, 학교 밖에서 둘이 처음으로 만남을 가졌다. 미국에서 틴에이저들이 놀 곳은 쇼핑몰이 전부이다. 남편이 딸을 쇼핑몰에 데려다 준지 두 시간 반이 지나 딸을 픽업하러 갔다. 딸에게 친구와 인사시켜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남편과 실랑이를 벌였다. 쇼핑몰 정문에 가서 딸과 친구가 나오는 걸 보자고 했더니, 남편이 주춤했다. 문자를 미리 보내놨으니 딸이 우리가 오는 걸 알 거라며 설득하여 함께 쇼핑몰 정문으로 가서 기다렸다. 잠시 후, 딸과 친구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딸은 반갑게 웃었고, 친구는 수줍게 인사했다. 친구의 얼굴을 보자, 걱정이 사라졌다. 공연하던 날 밤 먼발치에서 봤을 때는, 잘생기고 겉멋 든 틴에이저처럼 보였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아직 아기 같은 얼굴에 순수해 보였다. 수줍어서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는 친구와 하이, 굿바이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꾸밀 줄 모르고 체육복만 입고 다니던 딸이 예쁜 옷을 사달라고 한다. 아직 화장을 하지는 않지만 외모에 신경을 쓴다. 이성에게 관심이 없더니, TV 속 뽀뽀하는 장면을 눈 가리는 척하면서 빤히 본다. 그리고, 이성친구가 생겼다. 지금은 호감의 단계라고 말하지만, 사귈 마음도 있는 것 같다. 또래 아이들보다 늘 늦지만, 자신의 속도에 맞춰 성장하고 있다. 여전히 휴대폰 사용 시간은 하루 한 시간, SNS 사용 금지, 스마트폰은 1층에서만 사용 등의 규칙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또래 문화에서 뒤처지는 부작용이 있다. 그래서 딸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스마트폰 자율권은 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과 또 다른 또래 문화를 이루며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인기 그룹에 낄 수는 없지만.


집에 돌아온 후, 딸이 물었다.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영화를 봐도 되냐고. 그러라고 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의 여름 방학은 한여름밤의 꿈이리라. 혹시나 이 친구 때문에 울 일이 일어나더라도, 또 그렇게 한 뼘 더 성장하리라. 나는 쿨한 엄마가 되어, 너의 성장을 지켜보며 응원하리라. 부디 잔소리할 일은 없기를 바란다,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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