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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Jun 27. 2023

백 년 묵은 집_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하다

구식 창문형 에어컨을 여전히 사용하는 미국

나는 백 년 묵은 집에서 살고 있다. 정확히는, 현재 백십팔 년 묵은 집. 이 집에 살게 된 우여곡절은 생략하고, 일단 6월 연중행사를 소개해 본다. 백 년 묵은 집 여름 관리로 가장 중요하고 힘든 작업바로 창문형 에어컨 설치이다. 먼저 지하에 보관해 둔 에어컨 네 대를 일 층과 이 층까지 옮겨야 한다. 에어컨이 무척 무겁기 때문에, 이 첫 단계에서 포기하고 사람을 고용해서 에어컨을 설치하는 집이 많다. 혹은 사계절 내내  에어컨을 부착한 채로 지내는 집들도 있다.


허리를 삐끗하지 않고 에어컨을 옮겼다면, 일단 반은 성공이다. 다음은 창문에 잘 맞춰서 에어컨을 설치할 차례다. 창문형 에어컨에 대해서 듣도 보도 못했었기 때문에, 첫 해에는 설치에 엄청 애를 먹었다. 나무 창틀 위에 균형을 잘 맞춰서 에어컨을 고정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나무 조각들을 잘라서 창틀과 에어컨 사이에 끼워 넣고 겨우 설치를 끝냈다. 무거운 에어컨을 들고 어쩔 줄 몰라 낑낑댔던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에어컨 설치 삼 회차를 맞았다.


남편이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에어컨 설치를 미루고 있다가 날씨가 습해지자 부랴부랴 서둘렀다. 남편이 최대힌 조심하면서 에어컨을 지하실에서1층으로 옮겼다.  한 시간가량 걸려서 에어컨 네 대를 뚝딱 설치했다. 에어컨을 틀고 나니 시원한 바람좀 살 것 같았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미국에, 그리고 이 집에 살면서 정말 와닿는다. 시스템 에어컨 장착으로 천장에서 시원한 바람이 빵빵 나오는 한국의 아파트를 뒤로 하고 백 년 묵은 집에서 창문형 에어컨을 켜고 살고 있는 나. 처음에는 에어컨을 틀면 울려대는 시끄러운 소리에 서럽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여전히 구식 에어컨이 주는 번거로움 불편하지만, 여름의 눅눅함을 날려주는 제 기능을 하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그래도 가끔은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라는 물음이 생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린다.


글을 쓰기 전에 궁금해서 찾아봤다. 창문형 에어컨이 처음 출시된 게 1932년이라고 한다. 최첨단 시스템이 널린 세상에서 백여 년의 전통을 간직한 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구식 문물이라, 미국이라서 가능한 것일까? 우리 집에 창문형 에어컨이 최초로 설치된 게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이유로 집을 리모델하지 않았던 것일까? 잠시 살 곳, 몇 년만 살다가 이사 나가야 하니까 거금을 집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이 작은 집에서 신혼을 시작한 후 아이들이 크면서  큰 집으로 이사를 갔겠지?. 그후 그들은 행복했을까? 가끔은 작고 낡은 옛집이 그리웠겠지?


미국에 도착한 첫날, 집을 보고 속으로 눈물을 흘렸던 그 밤을 잊지 못한다. 이사온 첫 해수도 없이 다시 이사 나가고 싶괴로웠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힘들다. 한 해 두 해가 지나집의 장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백 년 묵을 동안, 거센 비바람에도 끄덕하지 않고 버텨낸 이 작은 집의 강인함이 마음에 든다. 미친 듯이 폭우가 쏟아지고 강풍이 부는 날에도 집 안에 있으면 안심이다. 집이 단단하게 나를 지켜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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