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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Jun 29. 2023

아이스크림, 달콤한 꿈

미국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가 특별해지는 순간

커피숍은 없어도 아이스크림가게는 있다! 미국에서 아이스크림 가게가 갖는 의미를 처음에는 잘 몰랐었다. 시댁에 처음 방문했을 때, 시어른들께서 아이스크림 가게로 나를 데려가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저녁을 먹은 후라, 배가 부른데 굳이 차를 타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나서는 게 달갑지 않았었다. 평소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는, 다 큰 어른들이 아이스크림 하나 먹겠다고 이 소동을 떠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십 여분 차를 타고 가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도착했다. 틴에이저들이 퍼주는 아이스크림 콘을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시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나, 넷이서 마주 앉아 서먹서먹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시드니의 여름밤은 아이스크림만큼 서늘했다.


사 년 전 미국으로 이사한 첫날, 나보다 먼저 이 집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아이스크림 기프트카드였다. 이웃이 환영 인사로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의 기프트카드와 손 편지를 남편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집 상태와 몇 십 분마다 울려대는 기차 경적 소리에 놀라서, 이웃의 다정한 선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낯선 삶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막막하기만 했다. 기프트카드를 어딘가에 던져 놓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일 년쯤 지났을까, 서류를 정리하다가 그 기프트카드를 발견했다. 집수리가 끝나고 삶의 여유가 조금 생긴 상태였다. 기프트카드가 아직 유효한지 모른 채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섰는데, 과거로 여행하는 것 같았다. 특이한 의자에, 빈티지한 실내가 마음에 들었다. 덩달아 아이스크림 맛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날 이후, 가끔 저녁을 먹고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은 날, 세 식구가 아이스크림 가게로 산책을 간다. 손님이 찾아올 때도, 어김없이 아이스크림 가게로 데리고 간다. 걸어서 이십 분 거리에 작은 번화가가 있는 이 동네를 손님들은 무척 부러워한다. 그러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지난 주말에 사춘기 틴에이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딸을 겨우 꼬셔서 아이스크림 가게로 밤마실을 갔다.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여전히 달콤함이 가득했다. 행복과 만족감만 가득한 마법의 장소에서, 여러 가족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백발의 노부부가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모습이 아이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부모님이 떠올랐다. 나를 처음 만난 날, 이국의 장래 며느리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 멀리에서, 두 분 역시 마음이 알싸한 날, 자식과 손주들을 그리워하며 아이스크림을 드실 것이다.


미국 여행을 하다 보면, 쇠락해 가는 동네에서도 아이스크림 가게를 만날 수 있다. 인적이 드문 동네에서도 여전히 아이스크림 가게는 달콤한 마법을 부리며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들인다. 커피숍은 없어도 아이스크림 가게는 있다. 무료한 일상의 즐거운 소동으로, 달콤한 추억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았다.  작은 꼬맹이가 백발의 노인이 되는 동안 아이스크림 가게는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킨다. 달콤한 꿈이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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