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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Jun 15. 2023

미국 중학교 졸업식에 가다

딸의 중학교 졸업식! 며칠 전 상장 수여식이 있었고, 오늘은 학생들이 강단에 올라가서 졸업장을 받는 행사가 열렸다. 저녁 여섯 시에 졸업식이 있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졸업식 직전에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도 아프고 기분이 별로였다. 딸은 먼저 학교에 가 있었고, 남편과 나는 5시 45분가량에 학교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티켓을 받고 있었는데, 남편이 티켓을 집에 놔두고 왔다고 했다. 티켓을 확인하시는 분께서 당장 입장을 시켜줄 수는 없으니, 여섯 시 식이 시작할 때까지 한쪽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벌써 몇몇 학부모께서 강당 안으로 입장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계셨다. 십 분 가량 그렇게 서서 다른 학부모들이 입장하는 것을 보고 있지나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남편에게 다시 가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지만, 평소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남편이 내키지 않아 했다. 결국 내가 가서 이야기를 했다. 티켓이 없으면서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안내 메일에 티켓을 반드시 지참해서 보여줘야 한다는 문구는 없지 않았냐고 말할 때, 내 표정은 안 봐도 뻔했다. 나, 화났소 티가 났을 것이다. 그렇게 입장을 허락받고 강단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자석이 꽉 차 있었다. 중간에 빈자리에 가서 앉기 위해서 여러 학부모들께 양해를 구해야 했다. 우리를 위해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통로 쪽으로 걸어 나와서 길을 마련해 주시는 분들께 무척 미안했다. 한 분 한 분께 죄송하다고 말했는데, 모두들 괜찮다고 상냥하게 대답해 주셨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화가 풀가시지 않았다. 티켓을 지참하지 않은 우리의 실수보다, 융통성을 좀 발휘해서 입장시켜 주면 좋을 것을, 그렇게 하지 않고 딱 잘라 규칙대로 해버린 분들을 비난하는 마음이 더 컸다. 기분 좋을 날, 꼭 그렇게 한쪽 구석에 몰아 놓고 벌서듯 기다리게 했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언짢은 표정으로 따졌던 나 때문에 그분들도 기분이 좋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좀 늦게라도 입장을 했으니 그걸로 된 건데, 부당하다는 생각에 싫은 티를 내버린 게 후회가 되기도 했다.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싶은 마음과 자책하는 마음이 서로 싸워댔다.


찜찜한 마음으로 앉아서, 아이들이 졸업장을 받는 것을 지켜봤다. 덩치는 크지만, 여전히 순수한 아이 같은 중학생들이 한껏 차려입고 무대 위로 한 명씩 올라왔다. 수줍게 졸업장을 낚아채고 재빨리 걸어서 강단을 내려가는 모습들이 무척 귀여웠다. 우리 딸도 마찬가지였다. 수 백개의 별들이 예쁘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졸업식이 끝난 후 저녁을 먹으러 갔다. 대학 특강 때문에 필라델피아에 잠시 묵고 있는 시누이도 와주었다. 오랜만에 셋이 아니라, 넷으로 숫자가 느니 음식도 더 맛있고 대화도 즐거웠다. 웃고 나자 좀 전의 찜찜했던 마음도 수그러들었다. 8학년이 최고였다는 딸의 말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예전에는 밥만 먹고 앉아 있던 딸이 이만큼 자라서 이제는 시누와의 대화에도 적극적이었다. 말이 통했다. 같이 농담을 주고받고 깔깔거렸다.


졸업식인데 기념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겨우 셋이 셀카 하나 찍은 게 전부이다. 시누랑 넷이 사진을 한 장 찍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시누가 미네소타로 돌아가는 토요일에, 기회를 노려봐야겠다.


딸, 졸업 축하해. 네가 한 해 동안 이룬 것들 중에,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바로, 잘 먹고 많이 큰 것!! 이제, 걱정을 놓아도 되겠어! 장하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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