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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Jul 06. 2023

미국인들에게 독립기념일의 의미란 무엇일까

미국일상, 독립기념일을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각

펑! 펑펑! 슈우웅! 치지지직! 퍼펑 펑 펑 펑! 불꽃놀이가 밤 11시까지 이어졌다. 밤하늘을 밝히는 불꽃이 활짝 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웃인 아그네스와 데이브의 집 뒷마당은 명당자리였다. 데이브가 만들어준 바비큐 스테이크, 새우와 가리비 요리를 배부르게 먹고 앉아 있으니, 왕이라도 된 듯 충만했다. 밤하늘은 불꽃놀이로 축배를 건네고, 땅에서는 반딧불이가 너울너울 춤을 췄다. 마당에별이 가득했다.


필라델피아에서 가까운 우리 동네에서는 매해 7월 4일에 독립기념일 퍼레이드가 열린다. 백이십 년 동안 이어진 이 행사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이다. 이 동네로 이주한 후 처음 퍼레이드를 구경 갔을 때가 기억난다. 이국적인 광경이 마냥 신기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우고 앉아서 웃고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는 것만으로도 흥이 나서, 퍼레이드 행렬이 내 앞을 지나갈 때마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기에 바빴었다.


그러나 지난해 퍼레이드를 구경하러 갔을 때에는, 좀 시큰둥한 마음이었다. 별다를 것 없는 똑같은 행렬에 호기심이 떨어졌고, 소방차들의 시끄러운 경적 소리가 달갑지 않았다. 이제 퍼레이드 구경은 마지막이겠거니 생각하며 멀뚱하게 앉아서 지나가는 행렬을 구경했다.


다시 7월 4일이 돌아왔다. 몇 주 전부터 폭죽 소리가 동네 여기저기를 둘쑤셨다. 독립기념일을 일찌감치 맞이하는 설렘이 담겨 있는 소리겠거니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총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안전한 동네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총기 난사 기사를 연관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폭죽 소리는, 사슴 사냥이 허락된 공원 근처에서 들었던 총소리와 흡사했다. 독립기념일을 한참 앞두고 이른 축제를 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이 날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한국에서는 광복절이라고 해서 큰 축제를 열며 온 동네가 함께 기뻐하지는 않잖아? 내가 모르는 뭔가가 이 문화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시어머니께서 오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어제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때마침 우리 집을 방문한 시어머니께서 퍼레이드 구경을 가고 싶다고 하셔서, 다 함께 집을 나섰다. 십여 분 걸어가는 동안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무척 더운 날씨였지만, 거리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아그네스와 데이브 가족에게로 갔다. 시원한 맥주를 한 병 얻어 마시자 좀 살 것 같았다. 주지사가 손을 흔들며 등장하자 사람들이 환호했다. 정치인들은 역시 쇼맨 십의 달인인지, 활기찬 모습이 위풍당당했다. 그에 반해 우리 동네 의원인 빌은 더위에 빨개진 얼굴로 인파와 악수를 하느라 바쁘고 지쳐 보였다. 윤이 빤짝빤짝 나는 빨간 소방차들은 올 해도 온갖 경적을 울려대며 뽐을 냈다. 여러 학교 마칭 밴드들이 흥을 돋우었다. 동네의 스포츠, 연극, 댄스 학원팀 아이들이 사람들의 환호에 멋쩍어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노란 옷을 입고 전통 춤을 추며 지나가는 중국팀은, 올해 연꽃 코스튬을 추가해서 재미를 주었다. 퍼레이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전문 마칭 밴드이다. 각 문화의 특색을 살린 화려한 코스튬을 입고, 경쾌한 음악과 춤으로 흥을 돋운다.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은 사탕 폭탄을 맞으며 눈이 휘둥그레졌고, 어른들은 음악에 맞춰 살랑살랑 춤을 췄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아주 조금, 독립기념일을 맞이하는 이들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난 후, 집에 와서 열기를 식혔다. 부랴부랴 감자샐러드를 만들어서 아그네스와 데이브 집으로 향했다. 해 질 녘 이웃들의 뒷마당 여기저기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조용하던 동네가 차로, 사람으로 가득 찼다. 데이브가 준비한 정성스러운 한 끼를 먹으며, 뒷마당에 앉아서 불꽃놀이를 보며 하루를 돌아보니, 미국사람들에게 독립기념일이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와닿았다.


독립기념일 축제에는 지역 공동체를 지지하며 다 같이 잘 살자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나누며 고마움을 전한다. 아이들에게 멋진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이들을 동심으로 돌아가서 웃고 떠들게 한다. 그 추억을 먹고 자란 아이들도 언젠가는 부모가 되고, 추억은 되풀이된다. 불꽃놀이는 그렇게 매해 하늘을 밝히며 사람들의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도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소속감이 처음으로 들었다. 막힘 없이 뻥 뚫린 사거리에서 불꽃을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춤을 추며 반짝이는 반딧불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꿈처럼 몽롱했다. 소심한 이방인의 서러움과 향수병을 달래주듯 반짝반짝 반딧불이가 말을 걸어왔다. '가족이 보고 싶지만, 그래도 난 괜찮아'라고 대답해 주었다. 나도 이제 이 동네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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