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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Mar 25. 2022

집시락, 프롤로그

단편소설, 이십 대 어느 밤에 대한 기록.

이 글을 쓰고 있었던 캄캄했던 새벽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불 꺼진 방에서 곤히 자고 있던 언니와 여동생의 얼굴도 기억이 난다. 컴퓨터 모니터의 푸르스름한 조명에도, 정적을 깨부수던 타자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언니와 여동생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기처럼 평온했던 얼굴을 보고 안심하며,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들겼던 그 밤을 나는 기억한다. 


타닥타닥 타타타타타타타, 타다닥 타다닥, 서러움을 쏟아냈다. 두려움도 함께 쏟아냈다. 이십 대 후반의 내 앞에 세상은 한없이 불투명했다. 나를 사랑하던 그 아이가 떠났고, 취업에서는 계속 좌절을 맛보았다. 내 삶에서 붙들고 있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며 웃고 떠들었지만, 마음속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목놓아 울 수 있는 나만의 공간도 없어서, 눈물이 꾹꾹 가슴속에 쌓여 갔다.


그래서 그 캄캄했던 새벽에 글을 썼다. 컴퓨터를 켜고, 목적도 없이, 자판을 마구 두들겼다. 주제도, 사건도, 결말도 없는 글 하나가 그렇게 어찌저찌 만들어졌다.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나의 이십 대 후반은 작은 흔적을 남기며 살아남았다.


캄캄하고 암담했던 날들도 언젠가는 옅어지기 마련이다. 눈물 대신 쏟아낸 글 덕분일까. 나는 다시 일어서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공부를 하고,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경력으로 취직을 하며 삼십 대를 채워나갔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내 앞에 세상은 투명한가. 캄캄한 새벽에 자판을 두드릴 일은 더 이상 없지만, 여전히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별로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터벅터벅 앞을 향해 걸어가는 것 뿐이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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