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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한

내 불행은 언제나 발 끄는 소리와 함께 내가 누운 자리 근처를 이리저리 배회하다 사라졌다. 엄마는 잦은 기침을 거실로 실어 보냈고 귀에 꽂은 이어폰 볼륨을 더 크게 올리며 이불 밑으로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애써 덮어 두었다. 그것과 별개로 날은 점점 따뜻해져 간다. 집 옆 외벽에 있는 오래된 계단에 앉아 내리는 햇빛을 맞고 있으면 알게 모르게 서글프고 무서워져 입을 막고 조용히 흐느껴 울었다. 이런 날이면 아무도 찾지 않는 무성영화 같은 어린 시절이 또다시 내 머릿속에서 상영되었다.

인천으로 이사오기 전 과천에서 지낼 무렵, 아버지가 살아 있을 무렵, 그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옷을 더럽힌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병원에 계셨고 아버지와 누나와 함께 지냈을 때였다. 더러워진 옷을 보고 아버지는 내 머리를 거칠게 밀며 집에서 내쫓았고 오갈 곳 없던 나는 아파트 현관의 낡은 출입문 뒤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익숙했던 모든 공간이 내가 갈 곳 없는 사람이 됐다는 느낌 하나로 모두 낯설고 어두웠다. 내가 처음 느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1년쯤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썩은 이파리가 떨어지듯 쓰러져 더 이상 싹을 피우지 못하셨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마치 연극처럼 많은 사람들이 울고 슬퍼하며 남은 우리 가족을 동정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울지 않은 건 우리 가족뿐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도망치듯 인천으로 이사를 왔다. 2년 정도 우리 가족도 아무 문제없는 다른 가족처럼 지냈으나 불행은 항상 예기치 못한 비처럼 찾아왔다. 어머니가 아픈 2년 동안 나와 누나는 항상 죄인이었다. 무수한 폭력을 견디며 어머니가 다시 병원에 입원했을 때 11살 꼬마는 깨달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틈에서 받은 사랑은 언제나 반쪽이였다.

그런 아이가 자라서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살아간다. 봄을 긍정하면 찾아오던 사랑. 그리고 두어 번 찾아온 연애 속에서 언제나 버려진 유년을 보상받으려 발버둥 쳤다. 내가 주려했던 사랑은 언제나 채 고갈되지 못하고 끝이 났다. 사람의 온기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고독은 찾아온다. 그리고 싸워야 했다. 끝없는 기대로 녹이 슬어버린 삶을 움직였다. 그럼에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 같다. 불행만큼이나 사랑 또한 예기치 못했으므로. 살을 전부 찢어버릴 듯했던 지난겨울에 나는 지나버린 사랑을 생각하며 온기를 빌려 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희망을 머리맡에 두며 잠들지 못하는 밤을 억지로 재웠다. 언제나 거칠었던 밤을 희망으로 연마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오늘에 섞인 과거가 내일로 흘러들어 간다. 그리고 나는 절룩거리며 따라간다.


2023/4/3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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