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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투덜거림

by 연지한

시인 혹은 작가의 자질이 무엇일까 곰곰이 고민해 본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써온 글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 문학성이니 완성도니 그런 것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누군가 본다면 아마 너무 직설적이다, 개인적이라 시의 확정성과 보편적 감성이 떨어진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낯이 부끄러워진다. 그럼에도 변명을 하자면, 문학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를 대변한다느니, 예술적 감각이라느니 그런 건 결국 한 명의 개인이 느끼는 시선에 의한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다.


문학성이 어쨌느니, 비유나 은유가 어쨌느니 그런 것들은 죄다 의미가 없다. 작가가 얼마나 고유한 시선 그리고 그것을 문자화했느냐. 그것만이 언어를 문학으로 치환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직설적이라던지 은유적이라던지 그런 것들은 작가 개개인의 내면의 폭발력 혹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과 시선의 밀도와 취향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배워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이 생각하고 사물에 대한, 현상에 대한 독자적인 인식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거로 치면 요즘 서점에 가면 한국 문학 코너는 잘 쳐다보지 않는다. 통찰력 있고 서늘한 문장보다는 소재의 독특함, 서사와 구성이 중점이 되는 작품들로 승부 보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서 잘 보지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책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일본문학만 읽는 중이다. 결국 소설, 수필, 시 모두 문장의 모음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라고 친다면, 오히려 가장 개인적인 감정과 시선으로 보편적 공감을 이루는 것이 더 문학적인 것이 아닐까? 그런 이유에서 일본 문학의 최고로 치는 사람은 다자이 오사무다. 그는 꾸밈이 없다. 마치 김수영의 시론처럼 그는 온몸으로 밀고 나아간다. 요즘 한국 문단에는 이러한 기개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것 같다. pc주의, 충격적인 소재, 스릴러, 공감, 치유 이런 것들로 승부를 보려고 하니 책을 펼치면 팍 하고 채이는 문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날 것으로, 본인의 인생으로 쓰인 문장의 멸종이다.


사카구치 안고는 이런 얘기를 했다.

"문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여야 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구원도, 어떠한 위로도 없어야 한다. 그저 발가벗겨진 채로 내던져진 '절망의 풍경'만이 문학의 고향이다."

영향을 받을지언정 나는 적어도 나의 문학에 나의 시선을 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아는 것이 없어야 비로소 본인의 열망 하나로 온몸으로 밀고 갈 수 있다. 가장 날 것의 문학은 그렇게 탄생한다. 아마 나는 뛰어난 작가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주절주절 변명이나 늘어놓는 것을 보아하니 성장은 요원한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를 꿈꾼 순간부터, 30년을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 거짓 없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를 만든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성장의 종말에 대한 또 다른 근거는 나는 문법이니 어휘니 구성이니 작법이니 그런 기본적인 지식도 없어서 창작의 고통을 모른다. 글 쓰는 입장에서 그것 하나만큼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는 건 힘든 일이다.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글쓰기까지 힘에 겹다면 진작에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저 죽어버리고 싶을 때마다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놓았을 뿐이다.


만약 내 글이 책으로 출판된다면 내 이야기들은 어떻게 남게 될까. 누군가의 마음에 파문을 남길까. 그것은 모를 일이지만,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에 공감하고 잠시 멈춰준다면 그 자체로 문학적이라고 할만하다.

사실 작가라고는 했지만 일본문학 코너에서 찾는 것은 소설뿐이다. 시의 경우는 아무래도 한국어로 된 시가 제일 잘 읽혀서(교육에 의해서든 한국어 특유의 운율 때문에서든)이기도 하지만 시집을 구매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한국 시단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한국의 시집을 보면 한없이 현대미술 같거나 한없이 동호회 수준이다. 등단도 못한 서른 살의 독자치고는 거만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걸 어쩌란 말인가.


소위 시인이라고 하면, 언어의 조각술이 절정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전위성도 아니고 단순한 일도 아니다. 한없이 개인적인 시선으로 변화시키는 사물과 현상이 중요하다. 그런데 요즘의 시집을 보면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제목도 알아듣지 못하겠는 건 차치하더라도 시의 중심을 잡아주는 문장도 없고 그렇다고 분위기로 체득되는 것도 없다. 윤동주나 김소월처럼 술술 읽히지 않는다. 이상처럼 완전한 전위의 압도적인 천재성도 없다. 별 헤는 밤이 길지만 애송시가 되는 이유는 각 문장이 모두 연계하여 시적 상상력을 펼치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도 없이 그대로 몸으로 빨려 들어온다.


요즘 시집은 보면 관념적이고 문장들이 다 따로따로 놀고 있다. 각각이 독립된 문장들이 한 페이지에 놓여 독자가 그중에 맘에 드는 문장 하나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만 같다. 한마디로 자기들만의 세계다. 한 명의 독자로서 통탄을 금치 못 할 일이다. 마치 나 이 정도로 어렵게 쓸 수 있어요. 나 이렇게 은밀하게 숨길 수 있어요 하고 자랑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쉬운 시는 또 고등학생의 연애편지 마냥 한없이 가볍다.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시들이 태반이다. 가장 일상적인 단어로 감정과 현상을 내포하게 하는 글쓰기. 그게 시라고 생각한다. 위의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요즘은 몸으로 밀고 가는 시는 적은 것 같다. 다만 머리로 쓴 시들이 범람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맘에 드는 시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참새 시인의 [정신머리]. 어렵지만 시가 주는 분위기 하나만으로 시집 전체의 흐름을 끌고 간다. 시인이 시를 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것이 몸으로 밀고 가는 문학이다. 강제로 타인에게 나의 모습을 주입시키는 것. 이것이 문학이 가진 보편성이다.

꽤나 낯간지러운 소리를 이만큼이나 했군. 물론 아직까지 나의 독서 편력으로 인해 너무나 좋은 글들은 놓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기엔 입맛에 맞는 글의 출현을 위해 투덜거릴 수 밖에 없다. 글을 쓰게 된 동기도 나에게 잘 읽히는 글을 써보자는 생각에서 비롯되기도 했고. 사실 글쓰기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예술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고되고 힘에 부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최선에 독설이 꽂히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런 장문의 변명을 남긴다.


추신: 너무 화내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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