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사는 것보다 살아있는 것들이 더 무서울 때가 있었다. 햇살에 목을 축이는 가로수와 손 때가 가득 탄 산책하는 강아지의 눈빛, 쉽사리 빛을 잃지 않는 꽃들의 색깔 같은 것들. 언제부터였는지 모를 시간 안에서 세계가 모두 무채색으로 보일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현상에 익숙해져 갔다. 오랜 시간 고민을 해봐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가치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내 모든 사상의 가장 앞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슬프게도 그런 순간에도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마치 너무 오랜 시간을 절망과 슬픔에 피폭된 것처럼 잠겨 갔기에 차라리 환희와 희망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내가 살 수 있겠구나 은연중에 깨달았던 것 같다.
간혹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검정일 때면 몇 번이고 다시 찾아오는 충동과 온종일 씨름하며 거꾸로 밤을 달렸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시야의 모든 것이 색을 되찾은 날이 있었다. 처음으로 '쉴 수 있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순간들이 내 몸 곳곳에 박혀 그토록 어두운 밤에 조용한 비밀을 속삭이듯이 빛을 뿌렸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순간들 마저 오래된 이야기로 남아 기억하고 있는 사람만이 기억하는 그런 케케묵은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젠 알 것 같다. 모든 희망은 언제나 같은 내용이 다른 색으로 쓰인다는 것을. 또, 이보다 더 오랫동안 간직할 이야기가 더 이상 내게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이 오래되고 먼지투성이인 이야기를 나의 희망으로 두기로 했다. 비록 내 희망의 빛은 꺼졌다지만 아직 나는 그 온기를 기억한다. 하나의 희망에서 떨어져 나오는 희망 또한 희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2022/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