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연작 3-눈사람

by 연지한

세상이 치열할 만큼 뜨겁다
여름에 짓이겨져 흉물로 내던져진 몸체
숨죽인 채 잡히는 머리칼과 날 때부터 땅바닥에 누워 신음하던 몸들을 변덕스럽게 부수어트릴까 힘껏 뭉쳐졌다

손길 한 번에 머리
손길 한 번에 팔
손길 한 번에 몸통

겨울엔 누구든 손길 없이는 제 형상이지 못했다
날 때부터 흐물어지기 위한 탄생
나는 겨울에 태어났는데 왜 세상엔 온기가 있지?
그래서 온계절이 여름이었구나
결국 태어나는 건 하루 종일 죽어가는 몸이 되기 위한 예행연습이었구나

여기저기 널브러진 또 다른 몸뚱이들이
구석구석을 많이도 차지하고 있다
아마 우리는 하나의 액자 같은 거야
직립할 때도 허물어질 때도 그냥 풍경처럼 무심해지는 것

어제는 멀리서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갔고
오늘은 지근거리에서 코가 떨어져 나갔고
방금 전에는 내 옆에서 눈이 하나 떨어졌지

그냥 그런 거야
겨울에 태어났으니 아무리 차가워도
매일 뜨겁게 달궈지면서 익숙해지는 것들 뿐

순간 차가워지고 순간 뜨거워지며
겨울 밤새 한 톨씩 허물어지기
겨울 족속들의 삶은 늘 그런 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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