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밤톨동화

첫사랑보다 애틋한 단어가 있다면

내게 단연, 첫 딸이다.

by 밤톨맘

누구에게나 '처음'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두 번째, 세 번째 사랑과는 달리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그 시작은 언제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내게 첫사랑보다 더 애틋하고, 삶의 모든 의미를 뒤흔든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첫 딸'이다. 그녀가 내게 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 '엄마'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별일 아닌 일에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며, 손쉽게 누릴 수 있는 감정이 바로 행복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내게 와주기 전, 나의 하루는 늘 생산성이라는 잣대 위에 놓여 있었다. 잠자리에 눕기 전, 오늘 하루를 되뇌며 스스로를 평가했다. '과연 내가 알찬 하루를 보냈는가?'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빈틈없이 채워진 스케줄 속에서만 비로소 '잘 살았다'고 안도하는 사람이었다. 성과가 삶의 중요한 가치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오롯이 '소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이 모든 과정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비'한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이 모든 순간이 더없이 만족스럽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오후 늦게 나지막이 들어오는 햇살 한 줄기와 나풀거리는 커튼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한 가닥에도 그저 웃음이 흘러나온다. '만족한 하루'와 '행복한 하루'가 이렇게 같을 수도 있구나.


잠이 들려는 아이를 토닥토닥 안으면, 거짓말처럼 온 세상에 평화가 찾아온다. 아이의 고른 숨소리, 작은 온기, 그리고 내 품에 안겨 잠든 아이의 모습은 깊은 안정을 선물한다.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이토록 평화로웠던 순간이 있었나. 단 한 번도 '평화'를 갈망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나의 가장 최고 우선순위를 ‘평화’로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삶에 이토록 깊고 고요한 평화를 가져다준 나의 첫 딸, 그녀는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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